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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꿰뚫는 날 선 시선… "안 팔려도 괜찮다, 내 방식대로 그렸으니"

    양평=허윤희 기자

    발행일 : 2023.11.03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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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미술상 윤동천, 9일부터 수상 기념전 '이면'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 들어서니, 가로 5.2m 대작이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작품 제목은 '자라나는 함성'. "남도의 어느 절터를 지나는데 이렇게 생긴 나무가 보였어요. 나무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뭔가를 나무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화가 윤동천(66)은 현실에 대한 날 선 비판 의식을 미술로 보여온 작가다. 일상을 새롭게 혹은 낯설게 다시 보게 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역할이라고 할 때, 가장 탁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회화·판화·설치미술·조각·사진 등 장르를 넘나들며 쓴웃음 짓게 하는 '풍자 미술'을 해왔다.

    9일 개막하는 제35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 기념전 '이면(裏面)'에도 정치·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신작들이 나온다. 작가는 "다양한 스타일과 매체를 사용해 제법 많은 주제를 다뤄왔지만 지속적으로 변하지 않고 관통하는 것은 '늘 새롭게' '가급적 친절하게' 그리고 '꾸준히'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용과 형식 면에서 전격적으로 새로운 것을 염두에 뒀고, 전업 작가로서 출발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다른 양식이나 주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현황에 반응한 작업들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주목받아 마땅한데 소홀히 취급되는 사회의 단면, 형식적으로는 얼핏 다른 내용처럼 보이지만 이면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업이지요."

    해석 가능성을 위한 힌트가 제목에 있다. 화장실 용품인 '뚫어뻥'에 금박을 칠한 설치 작품의 제목은 '절실한'. 동그라미 안에 한쪽 눈만 빼곡하게 담아 좌우로 배치한 작품 제목은 '바라보다-국회의원편'이다. 작가는 "왼쪽은 야당, 오른쪽은 여당 의원들의 눈인데, 조금 달라 보일 줄 알았더니 막상 이렇게 붙여놓으니까 거의 똑같아 보인다"고 했다. '결별하는 선1-출생률/자살률'은 1980~1990년대 비슷하게 움직이던 파란 선(출생률)과 붉은 선(자살률)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벌어지기 시작해서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는 흐름을 포착했다.

    짐짓 심각한데 유머 코드가 있다. '정치가와 지식인'은 머리, 몸통, 발에 각각 다른 동물 사진을 이어붙였다. 정치가는 뱀의 머리, 돼지의 몸, 맹수의 발을 합성했고, 지식인은 생쥐의 머리, 토끼의 몸, 펭귄의 발을 하고 있다. 간악하고 배부른 정치가와 약삭빠르지만 용기는 없고 행동은 굼뜬 지식인을 비꼰 것이다.

    갤러리에서 전시 제안이 들어오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안 팔릴 텐데 괜찮겠습니까?" 국제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이 열렸지만 돈 받고 판매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상업 갤러리라면 작품을 팔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전시 때마다 부담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반면 이번엔 조선일보라서 (판매 걱정 없이) 부담 덜고 준비할 수 있었다"고 했다.

    30년간 재임한 서울대에서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그는 "가르치는 일과 작업을 둘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젠 가르치는 건 할 만큼 했으니 내려놓으니까 그렇게 홀가분하고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작가란 직업은 죽을 때까지 남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내 기준, 내 방식대로 생각을 표현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직업 아닌가요. 그래서 행복했고,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 덕에 생계 유지는 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지요. 이렇게 30년을 보낸 작가도 많지 않을 겁니다."

    수상 기념전 '이면'은 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광화문 아트조선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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