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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백과사전] 진화하는 스포츠용품

    이영빈 기자

    발행일 : 2023.11.02 / 스포츠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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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굽 높은 마라톤화… 오븐 장갑 모양 도루 글러브

    지난달 8일 시카고 마라톤에서 케냐 남자 마라톤 선수 켈빈 킵툼(24)이 2시간 00분 35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서브2(2시간대 이하)'는 마라톤 역사에서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는데, 그 한계를 넘어설 준비를 마친 셈이다.

    킵툼은 이날 내년 발매 예정인 나이키 알파플라이3(가칭)를 신고 뛰었다. 마라톤용 신발 바닥은 밑창, 중창, 깔창 세 겹으로 이뤄져 있다. 알파플라이3는 중창 부위에 두꺼운 카본 플레이트(탄소섬유판)를 삽입했다. 카본 플레이트는 철보다 5배 정도 단단하면서도 유연해 다리 부하를 줄여준다. 과거엔 무게 탓에 얇은 탄소섬유판을 썼는데, 나이키는 가벼우면서 두꺼운 탄소섬유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종전 신기록 보유자 엘리우드 킵초게(39·케냐)는 2019년 '서브2'를 넘어선 1시간 59분 40초 기록을 세웠다. 당시 그는 베이퍼플라이 특수 제품을 신고 뛰었다. 이 운동화에는 탄소섬유판 네 장이 들어가 있었다. 세계육상연맹은 2장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이 기록은 비공식으로 남게 됐다. 다만 스포츠 과학 기술에 따라 선수 기량이 얼마나 극대화되는지 보여줬다. 그 뒤 나이키는 탄소섬유판 한 장만으로 네 장 효과를 내는 제품을 만들어 냈다. 지난달 시카고 마라톤에서 에티오피아 여자 마라톤 선수 티지스트 아세파(27)는 알파플라이 3와 비슷한 신발을 신고 여자 신기록 2시간 11분 53초를 세웠다.

    이처럼 스포츠용품들도 선수들과 발맞춰 진화한다. 야구에서는 많은 선수들이 주루할 때 주방용 오븐 장갑처럼 생긴 도루용 장갑(sliding mitt)을 끼고 뛴다. 이 장갑은 슬라이딩할 때 손가락 부상을 방지해 준다. 합성고무 재질로 일반 장갑보다 두툼하다. 슬라이딩할 때 손가락이 베이스에 부딪혀 꺾이는 걸 막기 위해 끝부분이 푹신하게 제작됐다. 뉴욕 양키스 선수 브렛 가드너가 2009년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쪽 엄지를 다친 이후로 고민하다가 2013년 주루 장갑을 처음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선 "왜 선수들이 오븐 장갑을 끼고 있느냐"는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유행이 널리 퍼져 스포츠용품 업체들마다 10만~15만원 정도에 이 장갑을 많이 판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도 널리 쓴다. 부작용도 있었다. 일부 선수들이 이 장갑을 길게 만들어 베이스에 먼저 닿게 하는 '꼼수'를 쓰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22년 장갑 최대 길이를 30㎝로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쇼트트랙에선 손가락 끝에 둥근 플라스틱이 붙은 이른바 '개구리 장갑'을 볼 수 있다. 쇼트트랙은 코스 111.12m 중 반절가량(약 53m)이 곡선인데 이 구간에선 원심력을 줄이기 위해 선수들이 몸을 트랙 안쪽으로 기울이면서 빙판에 손을 짚는다. 이때 너무 세게 짚으면 마찰력 때문에 속도가 줄어들어 균형을 잡느라 애를 먹는다.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김기훈(51·현 울산과학대 교수)은 스케이트화 발목 부분 고정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에폭시(epoxy) 액을 장갑 손가락 끝부분에 발라 써보니 효과가 있었다. 접착제 등으로 쓰이는 에폭시가 굳어 딱딱해지자 마찰력이 줄어 코너를 매끄럽게 돌 수 있었던 것. 규정 위반도 아니라 김기훈은 이 장갑을 끼고 금메달을 대거 따냈다. 이후 다른 나라 선수들도 다 따라 했다. 개구리 앞발 모양과 비슷하게 생겨 '개구리 장갑'으로 불린다. 지금은 플라스틱 방울을 붙인다.

    역도 스타 장미란(40·현 문체부 차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 당시 나무 뒷굽 역도화를 신고 나왔다. 원래 역도화는 가죽이나 고무 재질이 많았는데 그는 충격 완화가 되지 않는 딱딱한 나무 재질이 몸에 힘을 그대로 실어줄 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했다. 세계역도연맹은 신발 높이만 13㎝가 넘지 않게 제한할 뿐, 재질 관련 규정은 없었기에 가능했다.

    무한정 형식 파괴를 용인하진 않는다. 이언 소프(41·호주)가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전신 수영복을 입고 나와 3관왕에 올랐다. 물과 마찰력이 가장 덜하고 부력도 제공하는 폴리우레탄을 기본으로 표면을 프라이팬에 사용하는 재질인 테프론으로 덮었다. 상어 피부와 비슷하게 만든 것. 그 뒤 너도나도 전신 수영복을 입었고, 세계 신기록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수영 경기가 실력 경쟁이 아닌 '수영복 대결'처럼 변하자 국제수영연맹은 2009년 직물(織物) 수영복만 입도록 규제를 만들어 전신 수영복을 퇴출시켰다.

    [그래픽] 기록 경신의 숨은 공신
    기고자 :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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