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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事一言] 사과나무의 전언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문학평론가

    발행일 : 2023.11.02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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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사과 농사를 짓는 것으로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째다. 농사라고는 지어 본 적 없는 분들이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 받은 노하우와 유튜브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활용하며 차분히 실력을 쌓고 계시다. 아오리, 홍로, 홍옥, 부사… 첫해와 비교하면 재배종도 다양해져 이제는 어엿한 농가(農家) 분위기가 난다.

    10월 말에서 11월 초가 되면 1년 동안 정성껏 키운 사과들을 거두어들일 시간. 손 하나를 더하고자 나도 2박 3일 동안 머무르며 사과 따기에 합류했다. 냉해와 폭우로 수확량이 평년의 절반으로 줄었다는 말이 실감 났다. 빨갛게 익은 사과만큼이나 썩어서 버려지는 사과도 많았다. 병든 사과를 발견할 때마다 속상해하던 부모님도 이제는 마음을 비운 듯했다. 진인사대천명. 농사란 그런 거 아니겠냐면서.

    나는 빨갛게 물든 사과부터 따냈다. 덜 익은 사과는 붉어지도록 조금 더 놔둬야 했다. 한 알 한 알 따다 보니 처음엔 다 비슷해 보였던 나무들 사이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나무의 열매는 더 붉었고 어떤 나무의 열매는 덜 붉었다. 나는 곧장 궁금해졌고, 이내 구별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어떤 나무가 더 좋은 나무인지, 더 상품성 있는 나무인지.

    그러나 내 궁금증은 금방 시시한 질문이 되고 말았다. 잘 익은 열매가 많은 나무일수록 썩은 열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썩은 사과가 많지 않은 나무에는, 새빨간 사과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강한 빛을 감당하며 보기 좋게 숙성한 열매가 많다면 그 빛에 제압당해 물러 버린 열매도 많을 수밖에 없음을 일러주는 나무 아래에서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애초에 좋은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어둠이나 상처 같은 것들은 숨기거나 치료해야 하는 질병처럼 취급하는 시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흠결을 견디지 못하고 강박에 시달리는 시대에 사과나무 한 그루가 일러주는 빛과 어둠의 평균율이자 생의 이치였다.
    기고자 :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문학평론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99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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