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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미국 8배, 일본보다 10배 세계 최강 '불소' 규제

    이진석 경제부 선임기자

    발행일 : 2023.11.01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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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소로 불리는 플루오린은 토양 오염 물질로 규제받는다. 토지환경보전법의 기준에 따르면, 주거 지역과 임야·농지 등은 토양 1kg당 400mg을 넘어선 안 된다. 문제는 이 기준이 주요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높고 엄격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3100mg까지 허용되고, 일본은 4000mg이다. 미국의 8배, 일본보다 10배나 강한 규제다. 대부분의 나라는 별도의 기준조차 두지 않지만, 21년 전 우리는 세계 최강의 규제를 만들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새로 만드는 규제니 이왕이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하자고 했던 모양이다.

    불소 기준을 넘는 땅은 정화 작업을 해야 집이든, 공장이든 지을 수 있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비용이 들어간다. 최근 5년간 불소 관련 토양 정화 비용이 수도권에서만 5853억원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 재건축 조합은 지난 2년간 불소 토양 오염 정화를 하면서 사업이 늦춰졌다. 680억원이 들었다. 서울 후암동 서울시교육청 신청사 부지, 김포시 시립도서관은 공사가 1년 늦어졌다. 최근에는 서울 상암동 일대 신규 소각장 예정지도 불소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지질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합리적인 수준의 기준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정도라면 숫자만 고치면 될 듯싶지만, 본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

    기준 완화를 원하는 곳은 건설업체들이다. 정화 비용도 부담인 데다, 6~12개월 걸리는 작업이라 공사 지연으로 인한 자금 부담과 완공 지연 등이 문제라고 한다.

    반대쪽 입장도 있다. 중소기업인 토양오염정화업체 60여 곳은 일거리가 줄어 사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환경 오염을 막는 기업들인데 규제 완화로 엉뚱하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대기업 대 중소기업, 건설사 대 환경업체들의 대결 구도로 판이 짜이면 문제가 꼬일 수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혹시라도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흔들리면 일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규제 개혁은 기존 산업의 발목에 채워놓은 족쇄를 푸는 것이고, 신산업이 시장으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은 기존 업계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는 일이 많다. 이런 충돌과 실패가 규제 개혁과 혁신의 길목마다 등장한다.

    미국, 캐나다에서 허용되는 도수 있는 안경 온라인 판매는 안경사들의 반대에 막혀 있다. 편의점에서 팔리고 있는 안전상비약은 10년 넘게 13개 품목에서 단 하나도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약사들이 "약물 오남용 우려가 크다"고 반대하고 있다.

    내국인 대상 공유 숙박 허용은 기존 모텔과 여관 등의 반발이 문제다. 수백가지 소방, 안전, 시설 기준을 지켜야 하는 숙박업에 온라인 플랫폼에 가입만 하면 되는 공유 숙박이 등장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지적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변호사협회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규제 개혁은 기존 법령의 문구를 고치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 미래를 열기 위한 새 길을 뚫는 것이다. 규제 개혁은 단순히 행정편의주의, 부처이기주의를 깨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가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는 사라지게 되고, 택시업계의 기득권을 위한 '타다 금지법'이 등장하게 된다. 결국, 혁신과 미래가 멈춰서게 된다.
    기고자 : 이진석 경제부 선임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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