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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300원짜리 고물 거문고로 시작… 한눈팔지 않고 국악 외길 걸어

    윤수정 기자

    발행일 : 2023.11.01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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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정대석 거문고 명인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서울 사당동의 연구실에서 최근 만난 정대석 거문고 명인(73)은 자신이 2016년 하얗게 눈 내린 서울대 교정을 걸으며 썼다는 '백설이'를 직접 불러줬다. 2007년 서울대 최초 타대학 타과 출신 음악대학 교수로 임명된 뒤 9년 만에 맞은 정년퇴임식 후 홀로 나선 산책길에 만난 곡이었다. "빈 교정을 보는데, 아직 못 한 일이 많아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한편으로는 연주인으로 돌아가는 게 설레기도 했고요. 예술에는 정년이 없으니까."

    올해 30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정 명인은 지난 50여 년간 국내 거문고 연주 소리의 새 지평을 열어왔다. 기존 산조에선 잘 볼 수 없던 다양하고 화려한 연주 기법, 괘를 이동시켜 낸 다양한 음색 변화로 주목받은 '정대석제 거문고 산조', 거문고 전공자들의 단골 졸업 연주회 선곡인 '일출' '수리재' 등 창작곡만 70여 품을 선보여 왔다. 가야금 연주 분야에서 뛰어난 연주에 직접 음악을 만드는 실력까지 더해진 이로 고 황병기 명인의 이름이 먼저 꼽힌다면, 거문고 분야에선 항상 정 명인의 이름이 제일 먼저 불린다.

    한때 국내에서 거문고는 독주 악기로 주목받지 못했다. 북한에선 분단 직후 국악 관현악단 구성에서 거문고를 제외하는 걸 고려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 명인은 꾸준히 자신이 쓴 독주곡을 연주회로 펼쳐내며 그런 편견을 지워냈다. 서울 시립 관현악단 수석, KBS 국악 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을 거치며 유명 연주자로 바삐 지낼 때조차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제자들에게도 늘 직접 쓰는 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훌륭한 연주도 곡이 있어야만 바로 들리는 법이니까요. 요즘같이 저작권이 엄격한 때에 내가 쓴 곡이 가장 좋기도 하고요. 하하."

    그에게는 독학으로 독보적 위치에 올랐다는 평이 자주 따른다. 1964~1970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에서 약 6년간 수학한 것 외에는 국악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악사 양성소 입학도 '장학금을 준다'는 소리에 택한 것이었다. "다행히 필기시험 성적만 보고 뽑던 때라, 면접시험 땐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불러 합격했다"고 했다.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 가는 걸 1년 미루고 500원짜리 야학을 다닐 때였는데, 그마저 비싸서 중단했죠. 창덕궁 인근 판잣집에서 살았고, 이웃이 단소 명인 봉해룡 선생이었습니다. 그의 단소 소리가 어릴 때 유일하게 접한 국악이었죠."

    이후 정 명인은 "양성소에서 신입생에게 보여준 졸업생 연주회에서 한 선배의 거문고 소리에 운명처럼 반했다"고 했다. "무겁고 단정한 음, 명주로 만든 현의 울림, 무엇보다 연주할 수 있는 실력자가 국내에 몇 없는 '귀한 악기'라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고 했다. 부모 형제들과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고, 연습용 거문고도 없었지만 가난이 그의 소리 탐구를 막을 순 없었다. "우연히 동네 엿장수 수레에서 괘와 현이 다 빠질 만큼 부서진 거문고를 발견해 300원에 사왔어요. 직접 나무로 괘를 깎고, 양성소에서 친구들이 쓰다 남은 연습 줄을 얻어와 갈아 끼웠죠. 몸과 거문고 하나 누이면 꽉 들어차는 다락방이 단칸방 위에 붙어 있었는데 거기서 매일 밤 연주를 했습니다."

    대학 입학 전엔 경주시립국악원에서 거문고 강사로 일하며 등록금을 벌었고, 입학금이 저렴했던 단국대 국어국문과를 택했다. "대신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첨성대 등 경주 유적 곳곳을 누빌 수 있던 천우신조의 기회가 날 작곡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양성소 시절 절친한 친구가 빌려준 책으로 작곡을 익혔는데, 처음 단칸방을 벗어나 마주한 넓은 광경들을 곡으로 옮기며 재미를 느꼈죠. 달무리, 무영탑, 수리재…. 전부 그 시절 나온 곡들입니다."

    정 명인은 그렇게 익혀온 거문고 소리가 자신에겐 "산 공부와도 같다"고 했다. 이후 1999년 용인대, 2007년 경북대에서 각각 거문고 전공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지만, 자신이 서울대 강단에 설 수 있던 것도 "직접 연주와 작곡으로 체득해온 경험 덕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서울대 재직 시절 자신에게 거문고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교수 200여 명을 가르치며 결성한 '지음회'를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연구실 한쪽에는 당시 지음회 회원이자 법대 교수였던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선물한 글귀 '금운세심(琴韻洗心, 거문고 소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이 걸려있다.

    정 명인은 "최근 지음회 회원들과 함께 계속 국악 비전공자들만 초대하는 연주회를 열었고, 앞으로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대 음악대학 졸업 연주회 최초로 국악이 연주됐던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번 양악만 연주했는데, 지음회 교수들이 제게 배운 이후 이렇게 귀한 국악도 연주해야 한다며 학교 측에 건의해 준 덕분이었죠. 일회성에 그쳐 아쉬웠지만, '지음'의 역할을 톡톡히 느낀 때였죠. 국악을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소리에도 힘이 생기는 거예요. 계속 지음을 넓히는 게 내 마지막 목표입니다."
    기고자 :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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