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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그 거미줄은 지점장님 눈에만 보이는 겁니다

    이진석 경제부 선임기자

    발행일 : 2023.09.28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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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국민은행 한 지점에 새로 부임한 지점장이 1.5m가 넘는 긴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자동화기기(ATM) 3대가 놓여있는 지점 입구의 365코너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있었다. 이리저리 걷어내고 있는데 거래처 사장이 지나가다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거미줄을 걷어내고 있다"고 하다가 신임 지점장이 유난스럽게 군다는 말이 나겠다 싶어 "직원들이 바쁘니까 그동안 못 봤던 모양"이라고 덧붙였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지점장님, 그 거미줄은 지점장님 눈에만 보이는 겁니다."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 가려진 곳의 흠은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책임을 진 사람에게는 크게 보인다고 하더란다. 그 지점장의 눈에 거미줄이 보였던 것은 내가 맡은 지점, 다른 지점보다 실적도 좋고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내 지점, 승진과 미래가 달려있는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을 지면 달라지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성스럽게 된다. 은행장이든, 일선 지점장이든 같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은행에서는 눈 밝은 사람이 드문 모양이다. 거미줄을 넘어서 곳곳에 금이 가고 벽이 무너질 지경인데도 아무도 보지 못한다.

    경남은행은 투자 담당 직원이 2988억원을 횡령했다. 경남은행 연간 순이익보다 큰 액수다. 무려 13년이나 이어졌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는 10년간 벌어진 707억원 횡령 사건이 적발됐다.

    국내 1위 국민은행도 다를 것 없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국민은행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일부 직원들이 지난 2년간 60곳이 넘는 상장사들의 무상 증자 업무를 대행하면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0억원 넘게 챙겼다고 한다. 무상 증자 공시 전에 사서 공시 후 주가가 뛰면 되팔았다. 이런 기막힌 돈벌이가 은행에서 벌어졌다.

    사상 최대 횡령이 터져도 은행은 잔칫집이다.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로 만들어낸 4대 은행의 상반기 이자 이익이 16조원을 넘는다. 한때 유행하던 '따뜻한 금융'이라는 구호는 이젠 고객이 아니라 은행원들이 대상인 모양이다. 은행원 월급은 최상위권이다. 국민은행의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이 넘는다. 직장인 평균 연봉의 3배쯤 된다.

    퇴사도 최고 대우다. 희망퇴직을 하면 퇴직금에 최대 35개월 치 월급인 특별퇴직금(희망퇴직금)을 합쳐 6억~7억원을 받는다. 대학생 자녀가 있으면 몇 명이든 졸업 때까지 학기당 350만원 학자금을 지원한다. 자녀가 없으면 재취업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3000만원쯤 준다. 퇴직 후 2년간은 본인과 배우자의 건강검진도 제공받는다.

    은행마다 횡령과 비리가 꼬리를 물고, 금융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지만 이런 잔치가 벌어진다.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해마다 수조 원 이자 또박또박 챙기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어깨 펴고 다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처지인데 "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등장하지 않는가"라고 궁금해하면 안 된다. 비리 백화점 처지를 면하면 다행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범죄심리학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거리에는 낙서와 쓰레기가 늘어나고 범죄가 생긴다. 유리창을 갈아 끼우고, 거미줄은 걷어내야 한다. 내일 할 일이 아니고 당장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다. 은행만의 일이 아니다.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마찬가지다. 무슨 무슨 협회나 단체,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기고자 : 이진석 경제부 선임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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