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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문학상 예측 1위 찬쉐 "고통에도 희망은 핀다"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3.09.28 / 문화 A2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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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작 '황니가' 국내 출간 맞아 한국 언론과 첫 인터뷰

    중국 소설가 찬쉐(殘雪·70)는 검은 눈(雪)으로 글을 빚어낸다. 그의 필명이 가리키듯, '녹지 않아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눈'은 점차 검게 물들어갈 운명. 그러나 완벽히 검은 눈이란 없을 텐데, 찬쉐의 글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펼쳐 보인다. 찬쉐가 1987년 낸 첫 장편소설 '황니가(黃泥街·열린책들)'의 국내 출간을 맞아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한국 언론 첫 인터뷰. "이 작품에는 제 청춘의 폭발력이 가득합니다. 단숨에 써 내려갔지요. 당시 저는 끊임없이 재능을 폭발시켜야만 죽음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습니다."

    '황니가'는 검은 비와 먼지가 연중 쏟아지고, 오물과 동물 사체가 방치된 거리다. 소설의 상징과 비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거리의 썩은 냄새가 활자를 뚫고 나온다. 이 거리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는 모호하다. 사람들은 '왕쯔광(王子光)'이란 미지의 존재를 기다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죽음에 맞선다. 찬쉐는 "이 책은 '당신은 어떻게 죽음의 느낌이 엄습해 오는 것을 이겨 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찬쉐는 '중국의 카프카' 소리를 듣는 작가다. 프란츠 카프카를 비롯한 아방가르드(전위예술) 문학의 전통을 이으면서, 동시에 중국의 무속 신앙을 결합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소설 '마지막 연인'으로 미국 최우수 번역 도서상(2015)을 받는 등 영미권에서 주목받았다. 27일 기준 영국 베팅 업체 '나이서 오즈(Nicer Odds)'가 점치는 올해 노벨 문학상 후보 1위. 그는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제가 숭배하는 보르헤스나 칼비노 같은 문학 선배들도 이 상을 받지 못했거든요."

    찬쉐는 "아마도 저는 황니가의 주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1953년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지역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부모가 반공주의자로 몰려 노동 교화소로 끌려갔다. 그를 돌봐주던 조모는 영양실조로 죽었다. "어린 시절 저는 매일 류머티즘 통증과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제 첫 작품인 '황니가'를 쓸 당시 재봉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동시에 어린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저의 시간은 산산조각 난 상태였습니다. 길어야 30분씩 시간을 내 이 작품을 썼지요." 그 비결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철학자들의 사변 이성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감성과 일체화된 이성을 사용합니다. 작품을 사전에 치밀하게 구상한 적이 없습니다. 펜을 들었다 하면 곧장 소설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찬쉐는 여러 작품에서 사회 밑바닥의 인간 군상을 천착해 왔다. 그는 이것이 문화혁명(1966~1976) 시기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에 "폭발한 자기 영혼의 상태를 작품화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거다. 영혼이 억압당하고 욕망을 해소할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태는 황니가의 주민들과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황니가'에서 펼쳐지는 삶은 추상적이지만, 안에 담긴 묘사를 일률적으로 추악하다고 간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황니가'에 나오는 인물들과 같은 체험을 하지 않나요? 우리 삶에는 당연히 고통이 있지만 희망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크게 뜨고 굳세게 살아 나가는 것이지요."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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