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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3)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신정선 기자

    발행일 : 2023.09.28 / 문화 A2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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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장면 힘들게 찍었대" 고난도 궁금증으로 입소문 냅니다

    강혜정(53) 영화사 외유내강 대표는 추락과 비상을 모두 아는 제작자다. 올해는 비상의 해였다. 영화 '밀수'로 여름 시장에서 1위(514만명)를 차지했다. 손익분기점을 꽤 넘겨 이달 초 관계자들을 초대해 조촐하게 감사 행사를 했다. 참석자들 성화에 마이크를 잡은 그는 "감사합…"이라고 말하다 눈물을 쏟고 말았다. 목이 멘 그의 주변에서 박수가 터졌다. '밀수'는 내년 상반기 북미 개봉이 확정됐다. 현지 배급사와 마케팅 전략을 논의 중이다. 지난 22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난 강 대표는 "최근 미국 작가·배우 조합 파업으로 작품 제작이 지연돼 내년 북미 영화 시장은 무주공산이 될 것"이라며 "그 틈에 한국 영화를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외유내강은 대기업 제작사도 휘청거리는 올해 영화 시장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밀수'에 이어 추석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27일 개봉, 감독 김성식)은 줄곧 예매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강혜정이라는 여걸이 있어 가능한 성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려대 사범대 89학번인 강 대표는 1993년 졸업 후 우연히 충무로를 지나가다 독립영화협회 워크숍 전단을 봤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만들 수는 없다.' 그 말이 맘에 들었다. 워크숍에 찾아가니 한 남자가 자신이 조교라며 "콘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모른다"는 강 대표의 답에 "그것도 모르냐"며 1시간을 쉬지 않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이토록 즐거워할 수 있다니.' 반했다. 그 남자가 강 대표의 남편, 천만 영화 '베테랑'(2015)의 감독 류승완이다. 3살 연하 류 감독은 할머니와 남동생(배우 류승범)을 먹여 살리는 소년가장이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 점까지도 좋았다. 여자 친구보다 할머니를 더 챙기는 모습이 오히려 믿음직했다. 결혼하겠다고 했더니 알 만한 지인들은 모두 나서서 뜯어말렸다. 두 사람은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처럼 맹세와 혈서를 주고받고 구민회관에서 결혼했다. "그 혈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묻자 강 대표는 "그럼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20대에 결혼한 강 대표는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며 외유내강까지 키워냈다. 회사를 세운 것은 셋째를 임신했던 2005년. 외유내강은 배우들이 믿고 찾아오는 제작사로 유명하다. 영화 '모가디슈' 섭외를 위해 만난 조인성은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승낙했다. "호감 있어서 보자고 한 거 아녜요? 저 갖다 쓰세요." '천박사'에 분량은 짧지만 인상은 강한 배우가 필요해진 강 대표는 영화 '사바하'(2019)로 인연을 맺은 박정민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뭐해? 3일만 나와 봐." 인천 촬영 현장으로 달려온 박정민은 사흘 촬영 후 밥만 먹고 가버렸다. 노 개런티였다. 강 대표는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양복 한 벌 해줬다"고 말했다. '천박사'의 조연 이솜은 다른 작품 제안이 동시에 들어왔으나 "외유내강 현장이 재밌다는데 해보고 싶다"며 선뜻 출연하겠다고 나섰다.

    배우들의 신뢰가 높은 것은 배우들과 현장에서 호흡하는 스태프들에게 모든 일을 믿고 맡기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직원들에게 '네가 이 일을 제일 잘할 사람이라고 믿어. 책임은 내가 질게'라고 말한다"며 "그러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저도 처음 일 배울 때 그랬다"고 말했다.

    책임지는 것이 쉽지 않았던 때도 있다. 2017년 '군함도 사태'(강 대표는 이렇게 표현했다)로 추락을 배웠을 때다. 류 감독의 영화 '군함도'에서 조선인 사이 분쟁을 과도하게 다뤘다는 이유로 '친일 영화'로 낙인찍히며 악플 테러를 당했다. 억울해하는 스태프들을 다독이며 강 대표는 "우리가 영화를 못 만든 거야. 다음에 더 멋진 영화를 만들자"고 했다. 그리고 뒤돌아서 혼자 울었다. "너무 많은 인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과부하가 걸린 거죠. 인정하고 나니까 편해졌어요."

    추락에서 배운 힘으로 세 작품을 연달아 만들었다. '사바하'(감독 장재현), '엑시트'(감독 이상근) '시동'(감독 최정열)이 2019년 한 해에 동시에 나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전화위복이 된 거죠. 만약 '군함도'까지 잘됐으면 저도 사람인지라 눈에 뵈는 게 없었을 거 같아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천박사'를 만들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세대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제가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에요. 새 난장판이 열린 거 같아요. 맘껏 노는 새 괴짜들이 나올 때가 온 거죠." 새 세대는 강 대표의 집안에서도 나왔다. 대학생 장녀(25)가 '모가디슈' 때 제작부 막내로 일했다. 담당은 무전기 관리. 모로코 현지에서 150대를 일일이 나눠 줬다 걷어서 충전해야 했던 큰딸은 "요즘도 꿈에서 잃어버린 무전기 찾아다니다 깜짝 놀라 일어난다"며 "그래도 촬영 현장에서 사람들하고 부대끼니까 참 좋았다"고 했다.

    영화 마케팅에는 '기다리게 하는 영화'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밀수'는 투톱 여배우의 흥행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강 대표는 이를 뒤집기 위해 일찌감치 입소문을 냈다. '수중 세트 촬영이 어려웠다며? 김혜수와 염정아가 해녀라며?' 꼬리를 무는 궁금증의 답을 결과로 보여줬다. 강 대표는 "내년 개봉 예정인 '베테랑2'와 '2시의 데이트'도 잔뜩 기다리게 만들 것"이라며 "어떤 포인트를 건드려서 기다리는 영화로 만들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기고자 : 신정선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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