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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와 달리 겨울잠 안자는 제주 박쥐… "온난화 영향"

    제주=조유미 기자

    발행일 : 2023.09.27 / 사회 A1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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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생태원, 국내 첫 '장기 생태 변화' 연구 시작

    지난 22일 오전 한라산국립공원 내 해발 700m 지점의 구린굴(窟).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길이 400여m, 높이 2~5m인 용암 동굴에 들어가 10여 분쯤 걷자 초음파탐지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김선숙 국립생태원 박사는 "앞에 박쥐 떼가 있다"고 했다. 그때 왼쪽 귀 옆으로 "푸드덕" 소리가 났다. "박쥐다!" 동굴 천장에서 박쥐 떼가 이리저리 쉴 새 없이 날아다녔다. 김 박사는 "1500여 마리는 되는 것 같다"며 "외부 생명체가 들어왔다고 자기들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탐지기에 잡힌다"고 했다.

    박쥐는 온도에 따라 생존 전략을 바꾸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파악하는 지표 역할을 한다. 생태원은 4년 전 제주 박쥐와 육지 박쥐의 동면 패턴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강원 삼척의 긴가락박쥐는 12월 초부터 140여 일간 동면을 하는 반면, 제주 박쥐는 동면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고 동면 기간 계속 깨어나 먹이를 잡아먹었다. 먹이 활동을 하지 않고 몸속에 저장된 에너지만으로 겨울을 나는 통상적 동면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국립생태원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와 함께 제주 박쥐의 동면과 기후변화 연관성 등을 밝히는 4년간의 장기 연구를 시작했다. 이날이 첫 조사였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박쥐는 9월 말에서 10월 초 동면 준비를 한다. 먹는 활동만 하고 대부분 잠을 자며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이날 구린굴에선 잠자는 박쥐를 찾기 어려웠다. 생태원 관계자는 "우리가 들어간 영향도 있겠지만 본격적인 동면 준비에 들어갔다면 깨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동면 준비 시기의 제주 박쥐 몸무게는 13g으로 함평 등 육지 박쥐보다 4~5g 적었다. 동면 대비 에너지를 덜 축적한다는 의미다. 김 박사는 "제주 박쥐가 언제부터 이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온난화 등 제주 기온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며 "박쥐는 외부 기온이 10도 이상일 때 잠에서 깬다"고 했다. 10도 이상이면 먹잇감이 있을 것으로 체감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제주 서귀포의 1월 평균기온은 7.4도를 기록했다. 60년 전인 4.5도보다 2.9도 높다.

    동굴에서 박쥐 배설물이 쌓인 곳에 다다르자 한라산연구부 관계자들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정사각형 장비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교신기'다. 먹이를 먹거나 번식을 할 때 내는 박쥐의 초음파를 분석한다. 안웅산 한라산연구부 박사는 "배설물이 쌓인 자리는 박쥐가 매달려 잠을 자거나 새끼를 키우는 곳"이라고 했다.

    박쥐의 생태 변화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준다. 박쥐는 코로나 등 인수공통감염병의 중간 숙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몸속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없애려는 면역반응이 약한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2003년 중국을 휩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박쥐에게서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됐고,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박쥐에게서 낙타를 통해 사람에게 옮겨졌다고 한다. 박쥐의 활동 시간과 공간이 확대되면 다른 동물이나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고, 신종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도 커지는 셈이다.

    지구온난화는 박쥐의 활동 시간과 공간을 넓혀준다. 아열대기후인 동남아에는 130~140종의 박쥐가 서식하지만 우리나라는 23종, 영국 16종, 러시아는 6종으로 서늘한 지역일수록 줄어든다. 현재 온난화 추세가 이어지면 박쥐가 새 바이러스의 숙주이면서 다른 종으로 옮기는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가 지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리기도 했다. 박쥐는 꿀벌 못지않게 생태계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꿀벌처럼 밤에 피는 꽃의 수분을 돕고, 해충을 잡아먹어 생태계 균형을 돕고 있다. 생태원 관계자는 "박쥐 연구는 신종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했다.
    기고자 : 제주=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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