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뇌과학에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연구 분야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라고 한다. BCI는 두 가지 가능성 때문에 뇌과학자에게 매력적인 연구 주제다. 첫째,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척수 등을 다쳐서 사지 기능을 잃어버린 환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거나 휠체어를 움직여서 이동하는 일이 가능하다. 둘째, 컴퓨터에 내장된 정보나 지식을 뇌에 이식할 가능성도 탐색할 수 있고, 더 나아가면 컴퓨터를 매개로 사람들의 뇌를 연결할 수도 있다. 공상과학 소설에는 사람의 뇌를 해킹하거나 뇌를 수퍼컴퓨터에 연결하는 고도로 발달한 BCI 기술이 종종 등장한다.

그렇지만 BCI 기술에는 넘기 힘든 벽이 있었다. 컴퓨터 회로는 전자 회로인데, 뇌 조직과 신경은 아주 약한 유기체 조직이다. 따라서 이 둘을 연결해서 회로를 만들 때 뇌 조직이 손상되거나 면역반응이 일어나서 시그널 전송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잘 해결되지 않던 이 문제가 2020년 이후에 유연한 전자 회로(flexible electronics·혹은 유기 전자 회로) 소재의 인터페이스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지아 리우(Jia Liu) 교수 등이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으며, 여러 스타트업 회사가 놀랄 만한 업적을 내고 있다.

뇌-컴퓨터의 연결이 가시화되면서 부작용에 대한 대비도 시급한 일이 되었다. 윤리학자와 뇌과학자는 뇌가 컴퓨터의 명령을 받아서 내 몸을 움직인다면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부터, 뇌가 담은 정보와 지식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문제, 그리고 뇌 해킹에 대한 대비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 여러 학자가 이를 '신경권(神經權)'이라는 개념으로 집약했다. 나를 구성하는 정신 영역이 원치 않는 외부의 기록이나 조작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권리다. 21세기 뇌과학의 발전은 신경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등장시키고 있다. 기고자 :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98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