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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일본 도쿄에서 '기적의 소나무 뿌리' 특별 전시회를 방문했다. 얽히고설킨 직경 13m의 거대한 뿌리 앞에서 합장하는 일본인도 있었다. 기적의 소나무는 지진과 같은 재해를 피해 도망갈 수 없는 섬나라 일본인에겐 희망의 메시지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이와테(岩手)현의 다카다 소나무 숲엔 높이 10m의 쓰나미가 덮쳤다. 2km의 해안선에 나란히 있던 소나무 7만그루는 쓸려 나갔고 숲 바로 뒤 마을의 거의 모든 건물은 붕괴했다. 마을에서만 1750명이 사망·실종했다. 하지만 27.7m의 소나무 한 그루는 황폐화된 벌판에 꼿꼿이 서있었다. 173년 된 소나무가 어떻게 쓰나미를 버텼는지, 아무도 모른다. 비(非)현실적인 소나무는 일본인에게 '재해에 굴하지 않는 희망'으로 기적의 소나무가 됐다. 보존 처리한 소나무는 본래 위치에 서 있고 쓰나미에도 버틴 뿌리는 일본 각지를 돌고 있다.

일본은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7800톤을 바다로 흘려보냈다. 원전 운영사 도쿄전력은 약속대로 매일 해양의 방사능 수치를 공개했다. 검증을 담당한 국제원자력기구의 공언처럼 삼중수소(트리튬)는 기준치를 밑돌았다.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암묵적인 동의다. 야당의 반발도, 과격한 집회도 없다. 배경에는 과학적인 검증에 대한 신뢰 못지않게 후쿠시마 부흥이란 대전제가 크다. 원전 부지 내 오염처리수를 처리해야 노심 용융(멜트다운)한 후쿠시마 원전을 폐로할 수 있고 후쿠시마를 동일본 대지진 이전처럼 사람 사는 도시로 재건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포기한 땅인 체르노빌 원전과는 다른 접근이다. 1986년 원전 사고가 터진 체르노빌은 포기의 길을 택했다. 사고 난 체르노빌 원전은 방사능이 새지 않게 콘크리트로 파묻은 임시방편 상태다. 체르노빌 원전 인근은 '블랙 투어리즘(비극의 현장을 보는 관광)'의 폐허 마을이다. 일본 정부가 목표처럼 2051년까지 폐로에 성공하면, 대형 사고 원전을 인류가 처리한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폐로와 오염 제거 등에만 21조5000억엔(약 194조원)이 들어가는 도전이다.

동시대를 사는 인류로서 일본이 원전 폐로 성공이라는 '기적의 소나무'의 스토리를 쓰길 바란다. 다만, 기적의 소나무는 13m라는 거대한 뿌리 없이는 쓰나미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마지막 한 방울이 방류될 때까지 후쿠시마에 남겠다"는 발언은 그런 뿌리일 것이다. 이웃 국가인 우리 정부가 국민들의 많은 우려에도 괴담(怪談)보다 과학을 선택한 것도 IAEA 못지않게 큰 뿌리일 터다.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파트너인 한국의 굳은 심지와 뿌리 역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나 가미카와 요코 신임 외무상은 물론이고 일본 자민당과 우파 정치인들이 깊이 새길 것으로 믿는다. 기고자 : 성호철 도쿄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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