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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로 부르던 이가 세상을 떠났다. 학자로서는 아직 젊은 나이의 독신, 멋진 문학비평가이자 훌륭한 교수였다. 입원 중 자신을 대신해 수업을 맡아준 동료에게 당부하기를, 특히 청강생들에게 친절히 대해달라고 했다 한다. 그녀의 강의는 인기가 많아 늘 청강생으로 북적인 까닭이다. 문학을 나눴던 우리의 푸르른 시절이 그녀의 죽음과 동시에 증발해 버린 듯한 '물리적 통증'을 며칠 앓아야 했다. 새삼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두려운 일일지언정 하고 싶다면 해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말아야 맞는 건지 모르겠다. 마지막 통화에서 그녀는 내게 이젠 세상과 싸우지 말라며 걱정했다. 그 따뜻한 심려(深慮)가 나는 슬펐고, 위로받았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1856년 체코 프르지보르에서 태어났는데 모직물 상인인 아버지가 파산하자 1860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한다. 오스트리아는 반유대주의가 특히 심했고 훗날 나치의 본산이 된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자신이 반유대주의자에게 당한 일화를 10세 소년 프로이트에게 들려줬다. 좋은 양복에 새 모자 차림으로 산책하는데 한 기독교인이 달려들더니 "유대인은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나가라!"며 주먹을 날려서 새 모자가 진흙 바닥에 나뒹굴었다고. 프로이트는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하라는 대로 보도에서 내려가, 더러워진 모자를 주워 들었지." 순간 어린 프로이트는 해일(海溢) 같은 상처를 입었고 그것은 산악(山嶽) 같은 벽으로 변해 버린다.

프로이트가 로마를 동경하면서도 감히 가보지 못한 것은 무의식 속에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었다. 한니발은 프로이트와 똑같은 셈족이며,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프로이트에게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로마로 쳐들어갔지만 3마일 밖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한니발이 로마에 못 들어갔으니 프로이트 역시 그랬던 것이다. 프로이트가 알프스를 넘은 나폴레옹을 좋아하고, 군사 용어를 즐겨 사용한 것도 이 유년의 아픔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어느 날, 프로이트는 아들과 낚시를 하던 중 반유대주의자들의 공격을 받는다. 프로이트는 싸워서 그들을 물리친다. 이 '단 한 번의 용기'가 상처의 감옥에서 그를 해방한다. 프로이트는 곧바로 동생 알렉산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함께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이젠 세상과 싸우지 말라던 그녀의 목소리는 내 귀가 아니라 내 가슴에 있다. 손을 가져다 대니 이 슬픔에는 온기가 있다. 죽음은 산 자들을 위해 죽은 이가 남기고 가는 깨달음의 선물이다. 우리는 후회할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죽는 순간, 그때 용기를 내서 사랑하거나 맞서 싸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아무리 어렵게 보이는 무엇이었건 간에. 기고자 : 이응준 시인·소설가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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