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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쯤, 눈을 비비고 한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 가수 임영웅 콘서트 관련 페이지에 들어갔다. 보통 이 시간에 취소표가 풀리는데 사실 있을 리 만무하다. 미련 때문에 새로고침만 반복했다. 이미 그 전에 예매 오픈 당일엔 이 사이트의 서버 시계까지 확인하고 '초치기'까지 하며 접속했지만 실패했다. '나의 대기순서 383531'을 보고 스마트폰 앱과 머리도 함께 마비됐다. 수십 분 뒤 다시 접속했다. 대기 번호가 자그마치 '58505'로 줄었다. 대신 숫자 위에는 빨간 글씨로 '매진입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매진 문구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한 5만8504명이 더 있었다. 실패자의 넋두리가 이어진다. '선착순은 과연 공평할까'.

사실 '피케팅(피가 튀길 정도로 예매 경쟁이 치열한 티케팅)'에는 자신 있었다. 거리 두기 제한 때문에 띄엄띄엄 앉아 봐야 했던 코로나 시절에도 예매가 치열했던 뮤지컬 공연을 4번 연달아 봤고, 방탄소년단 팬인 사촌을 도와 티켓도 몇 번이나 예매했었다. 폴 매카트니, 브루노 마스 같은 내로라하는 가수 내한 공연 예매도 실패한 적 없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번 임영웅 콘서트는 예매 시작 1분 만에 370만트래픽이 몰려, 이 사이트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 현실이니 예매 사이트 서버 마비도, 몇 십만 단위 대기 순서도, 부모님을 위한 '대리 예매' 실패도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쟁이 아주 치열했을 뿐이다.

효도 코스프레였든 아니든 이 피케팅에 뛰어든 딸·아들 포함 수백만 명은 '클릭이 늦었다' '통신 속도가 느리다' 같은 이유로 좌절을 맛봤다. 임영웅씨를 향해 '주제 파악 못 한다, 왜 (6만여 석) 잠실 주경기장이 아니고 (좌석이 적은)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하느냐'는 얘기도 소용없다. 그래도 장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암표를 살 생각은 없다. 콘서트 관람 신청을 받고 추첨으로 티켓을 배분하는 일본처럼 차라리 사다리타기가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부모님이 피케팅을 뚫을 가능성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꼭 임영웅 콘서트가 아니라도 비슷한 일은 많다. 한국철도공사는 명절 대이동을 앞두고 온라인 예매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장애인 등을 위해 예매 날짜도 나누고 전체 좌석의 10%를 우선 배정하지만, 부족하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는 현장 판매를 없애고 100% 비대면 예매만 가능하게 바꿨다. 전화 예매가 있다지만 승차권 발매기(키오스크) 사용도 어려워하는 노인들은 서울역에 줄 설 기회도 사라졌다.

시대가 변했고 적응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불편하다. 지하철 탈 때마다 지갑에서 실물 카드를 꺼내야 해 잠깐 멈춰서는 어머니의 일상을 별생각 없이 넘기다가, 최근에야 교통 카드 앱을 깔아 드렸다. 가족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이들과 아예 시도조차 못 할 사람들의 차이도 찜찜하다. 사실 그보다 '나는 괜찮다. 할 줄 안다'고 믿고 있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같은 장벽을 맞닥뜨리게 될까 하는 불안감이 더 크다. 분명히 찾아올 그 순간, 담담하게 줄을 서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고자 : 이정구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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