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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아 전주에 다녀왔다. 9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2001년에 시작해 신종플루 때문에 2009년 한 해 거른 것을 제외하면 매년 전주에서 축제가 열리니, 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음악 축제라 하겠다. 이번 축제에는 11국이 참가하여 '상생과 회복'을 주제로 총 108회의 공연이 시행된다.

'전주세계소리축제'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 축제의 큰 축은 '소리'로 대표되는 전통음악과 '세계'가 가리키는 '월드뮤직'이다. 전통이 나아갈 길은 '원형의 보존' 또는 '변형의 추구'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지닌다. 전통음악을 원형 그대로 계승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변형을 통해 시대에 적응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변형은 전통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게 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명창 김일구, 김수연 등의 '국창열전 완창 판소리'와 젊은 소리꾼 이봉근과 김율희의 '라이징 스타 완창 판소리'가 전통의 보존과 계승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전통과 현대를 신명 나게 엮어내는 '악단광칠', 전통음악을 재즈, 록 등으로 독특하게 변주하는 '블랙스트링', 다양한 타악 연주로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소라 등은 변형의 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판소리로 창작한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는 판소리에 현대적 숨결을 불어넣어 그 외연을 확장한 것이다. 경기소리꾼 이희문은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며 폐막 공연을 흥겨운 춤판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한다.

다채로운 음악의 만남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중요한 시도다. 시대에 따라 전통음악이 탈바꿈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음악이 들어와 뿌리내리는 데 성공한 사례는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내력 역시 깊다. 가야금과 바이올린처럼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의 협연을 의미하는 선양합주(鮮洋合奏)는 이미 1930년대 음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주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이번 개막 공연에서는 판소리꾼과 오페라 가수가 함께 무대에 올랐고, '경기전(慶基殿)의 아침'이라는 공연에서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반악기 하프시코드(harpsichord)와 우리의 거문고, 단소가 어우러져 고아한 맛을 자아냈다.

이질적인 요소가 뒤섞이고 서로 스며들어 새로운 음악으로 거듭나듯이, 축제도 저마다 다른 빛깔의 사람들이 공감, 소통, 연대를 통해 하나가 되는 장이 될 수 있다.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축제성은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관객이 주인 되어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일이 아니겠는가. 한 단계 도약을 시도한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축제성 회복의 원년을 맞이하길 바란다. 기고자 :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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