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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 최전선으로 재부상

일자리와 안전한 삶을 찾아 유럽으로 향하는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이 이탈리아 최남단의 작은 섬 람페두사(Lampedusa)로 몰려들면서 이곳이 유럽 불법 이민자 문제의 최전선으로 재부상했다. 올해 들어서만 섬 주민(약 6000명)보다 20배 많은 12만명이 북아프리카에서 보트를 타고 이곳으로 넘어왔다. '불법 이민 근절'을 내세운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집권한 이탈리아와 이웃 나라 프랑스는 물론, 날로 심각해지는 불법 이주민 문제로 골치를 앓아온 유럽연합(EU)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일간 르피가로 등 프랑스 주요 매체들은 19일(현지 시각) "프랑스 정부가 최근 람페두사섬에 도착한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프랑스 유입에 대비한 비상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최근 이 섬으로 난민들이 하루 수천 명씩 몰려들면서, 이탈리아발(發) 불법 이주민들이 대거 프랑스로 넘어올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 지대인 남부 니스 인근 멍통(Menton)에서는 불법 이민자 유입이 평소의 3배 이상인 하루 200~300명으로 늘어났다고 르피가로는 전했다.

이탈리아와 맞닿은 프랑스 알프마리팀주는 아예 이민자 임시 보호소 100개를 추가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나섰다. 불과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존 시설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임시 보호소는 무작정 국경을 넘어 망명 신청을 하는 이민자들을 심사·분류 기간 붙잡아 두는 데 필요하다. 프랑스 내무부 고위 인사는 "정치적 박해 등을 이유로 망명이 허가되는 이들은 극히 일부"라며 "난민 대부분은 자국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라고 못 박았다.

람페두사의 보트 난민은 이미 20년이 넘은 문제다. 이 섬은 튀니지 해안 도시 마디아(Mahdia)에서 불과 130㎞ 거리에 있다. 목선이나 고무보트로도 하루면 도착할 수 있다. 스페인이나 그리스로 가는 다른 지중해 코스보다 안전해 유럽으로 가려는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단골 이주 경로가 됐다. 람페두사섬으로 향하는 불법 이민자는 2000년대 초반 한 해 1만여 명에서 2005년 2만여 명으로 급증했고, '아랍의 봄'이 발생한 2011년 이후엔 연간 10만명까지 폭증했다. 2013년엔 교황이 직접 이 섬을 방문하기도 했다.

점차 줄어들던 람페두사행(行) 이주민은 지난해부터 다시 급증했다. 이탈리아 정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이 섬에 도착한 불법 이주민은 12만명을 넘어섰다. 내전과 쿠데타 등 중동·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는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변화로 생활고가 극심해진 탓으로 추정된다. 안사(ANSA)통신은 "지난주에만 1만명이 넘는 난민이 도착했고, 12일엔 하루 112척의 보트로 5000여 명이 도착,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람페두사섬의 난민 보호소는 수용 능력이 최대 850명에 불과해 수천 명이 노숙을 하는 형편이다.

람페두사섬 사태에 놀란 이탈리아 정부는 이미 지난 4월부터 6개월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500만유로(약 72억원)를 투입해 이탈리아 곳곳에 새 이민자 수용 시설을 짓는 한편, 망명 자격이 없는 대부분의 난민을 상대로 신속한 추방 작업도 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 브로커에게 1인당 수천 달러(약 수백만 원)를 주고 넘어온 이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고, 몰래 탈출해 프랑스 등 인접국으로 도망가는 사례가 줄을 이어 골치를 앓고 있다. 프랑스 등 인근 EU 국가와도 외교적 잡음이 일 정도다.

지난해 10월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워 집권한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입장도 난처해진 상황이다. 그는 난민 보트가 아예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출발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총선 당시 "리비아 해안을 이탈리아 해군으로 봉쇄하겠다"고 주장한 데 이어, 최근에는 EU와 함께 튀니지와 '포괄적 파트너십'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EU는 튀니지에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의 자금을 주고, 이탈리아는 각종 경제 협력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대신 튀니지는 국경 통제와 불법 이민 브로커 단속을 강화해 난민 보트의 출항을 막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7일 멜로니 총리와 함께 람페두사섬을 찾아 "이주민 급증은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EU 차원의 더 강력한 대책을 시사했다. 이튿날 이탈리아 정부는 불법 이주민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전에 구금 가능한 기간을 최장 135일에서 최장 18개월로 늘리는 조치도 내놨다. 1년 반에 달하는 사실상의 감옥살이를 하기 싫으면 람페두사로 오지 말란 뜻이다.

[그래픽] 람페두사섬 위치도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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