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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역으로 시작해 75세에 칸 레드카펫 밟은 '봉준호의 배우'

    신정선 기자

    발행일 : 2023.09.19 / 사람 A2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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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배우 변희봉 별세

    영화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 등에 출연한 '봉준호의 배우' 변희봉(81)씨가 1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1942년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방송 생활을 시작해 50여 년간 영화와 TV에서 대체할 수 없는 개성적 연기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성우에 지원한 것은 우연이었다. 20대에 상경해 제약 회사 숙직실에서 숙박을 해결하던 그는 늦은 밤 라디오 드라마를 듣다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다니'라는 생각에 무작정 공채에 지원해 선발됐다. 장성 사투리가 남아있던 그를 라디오 국장이던 차범석 선생이 발탁해 연기와 발성을 가르치고 연극 무대에 세웠다.

    배우 데뷔는 1970년 MBC 드라마 '홍콩 101번지'였다. TV 조·단역을 거치며 절치부심하던 그는 '조선왕조 500년-설중매 편'에서 유자광 역할로 스타가 됐다. 걸걸한 목소리에 눈을 부릅뜨며 던진 '이 손 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가 장안의 유행어가 됐다. 유자광 역으로 1985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인기상을 받았다. 드라마 '찬란한 여명'(1995), '허준'(1999) 등에 출연했다.

    영화 데뷔는 '팔불출'(감독 고응호·1980)이었다. '내시'(감독 이두용·1986), '씨내리'(감독 남기남·1992) 등에 나왔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를 재발견한 것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봉 감독은 국민학교 6학년 때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사이비 종교 교주로 나온 그를 보고 독특한 동작과 표정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999년 자신의 장편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준비할 무렵 그에게 출연을 제안하며 "선생님을 위해 쓴 역할"이라고 했다. 보신탕을 좋아하는 괴상한 아파트 경비원 역할이었다. IMF 여파로 출연료가 깎여 낙향을 고민하던 그는 봉 감독의 열정에 출연을 수락했다. 이후 봉 감독과 함께한 '살인의 추억' '괴물'이 잇따라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하며 영화 '옥자'(2017)까지 봉 감독의 단편영화 2편을 포함해 모두 6편에 출연했다. '옥자'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 레드카펫을 밟았을 당시 그의 나이 75세였다. 난생처음 받아본 기립박수에 그는 "이제까지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진 느낌"이라며 "고목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뒤늦게 만개한 영화 인생을 만끽했다.

    봉 감독의 영화마다 변희봉이 맡은 역할 이름은 '희봉'이었다. 본명은 변인철. 김인철, 백인철 같은 배우들의 세금 고지서가 계속 자신에게 날아와서 어릴 때 집에서 부르던 이름인 희봉으로 바꿨다고 했다. 봉 감독은 과거 본지 인터뷰에서 희봉 이름을 계속 쓴 데 대해 "희봉은 희봉이다. 다른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며 "변희봉 배우는 언제나 그 역할 자체가 되기 위한 열정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 "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강한 개성이 있는 배우"라며 "강렬한 눈빛과 폐부를 울리는 특유의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고집이 세고 꼬장꼬장해 별명이 '꼬장쟁이'였다. 2006년 '괴물'로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2020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의 별세 소식에 문화계 인사들이 조의를 표했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 함께 출연한 배우 송강호는 이날 별세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고인과 영화 '주먹이 운다'(2005)를 만들었던 류승완 감독은 "우리에게 빛나는 연기를 남겨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후 12시 30분, (02)3410-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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