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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근의 지구 반대편] '아르헨 트럼프' 때문에 무상 의료 사라질라…

    후후이(아르헨티나)=서유근 특파원

    발행일 : 2023.09.18 / 국제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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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 지역 볼리비아인들 볼멘소리

    12일 오전(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북부 후후이주(州) 산살바도르데후후이에 있는 파블로소리아 종합병원. 복도 양쪽에 길게 놓인 의자에 100여 명의 환자가 꽉 들어차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중 볼리비아의 국경 소도시 비야손에서 왔다는 한 여성 환자는 기자에게 "볼리비아보다 병원 시설이 좋은데 무료라서 딸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온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도 무료인 아르헨티나 공공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접경에서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곳에 온다는 것이다.

    이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볼리비아인이 많은 날에는 전체 환자 중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전국 공공 병원 이용자 가운데 외국인이 20%에 달하고 이 중 상당수는 볼리비아인이라고 보고 있다. 볼리비아에서 건너와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는 이들뿐 아니라 볼리비아에 거주하다가 일시적으로 국경을 넘어와도 무료 의료 이용이 가능하다. 볼리비아는 남미 공동 시장(MERCOSUR) 준회원국이어서 아르헨티나 출입국이 자유로운 편이다. 이 때문에 볼리비아 접경 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아르헨티나 공공 병원이 인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외국인들의 '의료 쇼핑'은 대폭 축소될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 실시된 대선 예비선거(PASO)에서 1위를 차지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극단적 보수)'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 의원이 '외국인 무상 의료 중단' 공약을 밝혔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일부 비용을 부담토록 해 과도한 의료 이용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또 일부 분야는 민영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공약에 포함됐다. 밀레이가 다음 달 22일 열리는 대선 본선에서 당선될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이 같은 방안이 시행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외국인에 대한 무상 의료 제공은 지난 수년간 논란이었다. 정부와 지자체 재정으로 운영되는 아르헨티나 공공 병원들은 노후화한 상태다. 오랜 기간 지속된 경제난으로 인해 공공 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었다. 그런데 남미 각지에서 몰려오는 외국인들에게까지 무상 의료를 제공하다 보니 진료·수술 대기 시간이 늘어나고 의료의 질은 떨어졌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아르헨티나인들은 공공 병원을 '저소득층이나 이민자가 가는 질 낮은 병원'으로 여겨 기피하고, 높은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 사립 병원을 찾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이처럼 '국민 세금이 외국인 때문에 낭비된다'는 여론이 커지자, 밀레이가 칼을 빼든 것이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인 몬디니 마르틴씨는 "밀레이를 뽑지는 않았지만, 그의 의료 개혁은 찬성"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아르헨티나 대도시에서 임시직 등으로 일하는 외국 출신에 대한 차별이란 불만도 나오고 있다. 병원에서 만난 볼리비아 거주자 후안 로페스씨는 "볼리비아인들은 청소부와 같이 아르헨티나인들이 기피하는 고된 일을 하면서 경제에 기여했다"고 했다. 볼리비아 거주자 레녜 로하스씨는 "밀레이와 그의 정책을 증오한다"며 "생활비에 의료비가 더해질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라고 했다.
    기고자 : 후후이(아르헨티나)=서유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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