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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첫 부커상… "문학 속엔 우리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썼다"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3.09.15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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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쓴 英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

    그의 색깔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 영국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64)가 나타나자, 알록달록한 옷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2019)을 흑인 여성으로선 처음 받은 작가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한국을 처음 찾았다. "빌딩 숲에 사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렴풋이 일본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은 굉장히 한국적이다. BTS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패션 감각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웃음)."

    작가에게 색깔은 평생의 화두였다.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이면서, 20대를 레즈비언으로 보냈다. 작품의 화두는 단연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와 '성(性)'이란 정체성. 그는 "흑인이자 혼혈 여성으로서, 영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았던 정체성이 평생 동안 내 창작에 영향을 줬다"며 "흑인도 영국의 중요한 구성원인데, 우리의 이야기가 문학작품에 없었기 때문에 작가가 됐다"고 했다.

    자신의 색깔을 희석시키지 않는 데에서 그의 힘이 탄생했다. 연극 학교를 나온 뒤엔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극단을 만들었다. 흑인 여성이란 이유로 활동에 제약이 컸기 때문. "주류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실험을 통해 우리만의 방식과 형식을 찾으려고 했다. 20대 이전과 이후로는 이성애자이지만, 레즈비언으로 살았던 그때가 돌아보면 아주 멋진 시절이었다. 연기를 하고, 소설을 자유롭게 쓰고, 창의적인 여성들과 교류하며 자아를 발견했다." 작가는 첫 책인 시집 '아브라함의 섬'(1994)을 시작으로, 운문과 산문을 결합하는 등 매번 새로운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부커상 수상작인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비채)은 작가의 여덟 번째 책. 실제 그의 삶과 닮아 있는 레즈비언 연극 연출가 '앰마'를 중심으로, 영국 여성 열두 명의 삶을 각자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인물 대다수가 흑인 레즈비언. 삶의 애환을 통해 그들이 지닌 고유의 색깔을 보여준다. 마침표가 각 챕터의 마지막에만 찍힌 채, 문장을 쉼표와 행 바꿈으로 끊어내는 작품은 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문장의 시작과 끝에 구애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제 작품 다수는 형식이 실험적이고,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보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어렵다. 부커상을 받고 나서야, 쉽게 읽힌다는 걸 독자들이 알아줬다."

    그에게 부커상 수상과 관련해 인상 깊은 반응을 묻자, '옆집 남자'를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인데, 찾아와서 '못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집 경계와 관련해 말다툼을 오래 했었다. 생각이 바뀐 게 참 이상했다. 나도 그 남자도 (부커상을 받기 전과) 똑같은 사람인데." 부커상을 받기 전, 작품성과는 별개로 대중과 언론은 그를 외면했다. 부커상을 받은 뒤 두 달 동안, 경력 전체보다 많은 인터뷰를 했다. 2020년 말까지만 인터뷰를 300여 회 했다고 한다. 그는 "부커상은 제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도록 힘을 줬다"며 "저는 항상 사회 활동가로 살았다.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등 소수자에게 더 많은 평등의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작가는 "장르가 달라도 문학의 목적은 다 같다. 문학이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기록하게 하는 것"이라며 "인류는 항상 문학을 필요로 하며, 문학은 항상 보호돼야 한다"고 했다. 작가와는 다른 색깔을 지닌 한국 독자에게는 이 말을 당부했다. "제 책은 주로 흑인 여성에 관한 것이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제 책을 즐겁게 읽기를 희망한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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