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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시대상을 담은 노래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발행일 : 2023.09.13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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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겪은 佛·獨, '괴팅겐' 부르며 앙금 풀었죠

    최근 미국에서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정부의 세금 정책과 복지 정책을 비판한 무명 가수의 노래가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난 영혼을 팔며 온종일 일하죠.' '정치가들이 광부들에게 관심을 돌렸으면 좋겠어요.' '복지금을 빼돌리고… 젊은이들은 좌절하며 추락하고 있어.' 소외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낸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 노래는 공장 노동자 출신 가수 올리버 앤서니가 부른 '북리치먼드의 부자들(Rich Men North of Richmond)'이에요. 지난달 유튜브에 공개됐는데, 화려한 반주나 퍼포먼스 없이 기타 하나만 연주하며 부르는데도 현재 조회 수가 6200만을 넘어섰어요. 이 노래는 워싱턴 정계의 이목도 끌고 있어요. 특히 미국 보수 진영 공화당 정치가들은 이 노래를 소외된 일꾼을 위한 찬가로 여기고 있어요. 미국 진보 진영은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내세우며 백인과 남성들이 주로 좋아한 컨트리 음악을 공격해 왔어요. 이렇게 큰 인기를 구가하는 노래나 음악은 시대상을 보여주는 통로의 하나가 돼요. 심지어 노래가 역사를 바꾸기도 하죠. 어떤 음악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고 찾아 들어보도록 해요.

    프랑스·독일 화해 통로 된 '괴팅겐'

    프랑스와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할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러다 1963년 양국은 '독일·프랑스 화해 협력 조약'(일명 엘리제 조약)을 체결했어요. 이 조약을 통해 숙적이던 양국은 화해와 과거사 재정립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죠. 독일 아데나워 총리와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이 엘리제 조약을 맺으면서 적대국에서 사이 좋은 이웃 국가로 관계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화해는 양국 청소년 교류를 통해 큰 진전을 이뤘는데, 여기에는 '괴팅겐'이라는 노래가 큰 역할을 했어요.

    프랑스 출신 유대인 샹송 가수 바르바라는 독일과 역사적으로 얽힌 껄끄러움 때문에 독일 방문 제의를 몇 번이나 거절했어요. 그러다 '울며 겨자 먹기'로 1964년 독일 도시 괴팅겐에 가게 되죠. 그런데 막상 공연에서 그는 독일 학생들의 열광적 환호에 감동해요. 현지에 며칠 더 머무르며 곡을 만들었는데, 이 노래가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샹송 '괴팅겐'입니다. '결코 돌아오게 하지 말아요, 피와 증오로 얼룩진 시간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어서 말예요. 괴팅겐에, 괴팅겐에. 그리고 경고음이 울린다면 사람들이 다시 무기를 손에 든다면 내 가슴은 눈물을 흘릴 거예요. 괴팅겐을 위해, 괴팅겐을 위해.' 노래가 큰 인기를 끌자 바르바라는 독일어판도 내놓았어요.

    노래는 이후 도시 괴팅겐의 상징이 됐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괴팅겐'이 오랫동안 단절된 프랑스와 독일 젊은이가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됐다는 점이에요. 우연한 초청 방문과 이를 계기로 만든 노래 한 곡이 전후 서먹했던 프랑스와 독일 전후 세대 간 소통과 이해의 통로가 된 거죠. 이후 독일과 프랑스는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동 역사서도 편찬하면서 화해의 길로 나아가 서로 한 발 한 발 가까워지게 됐어요.

    40년 만에 부활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각국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독특한 음악이 발전했어요. 아르헨티나에는 탱고, 브라질에는 삼바, 그리고 쿠바에는 쿠바 손과 룸바가 있죠. 쿠바에서는 1930~1940년대 '소셜 클럽' 같은 사교장이 크게 유행했는데, 음악가들은 여기서 연주하며 이름을 알렸어요. 수많은 곡과 유명 연주자가 등장한 이 시기를 '쿠바 음악의 황금기'라 불러요.

    하지만 쿠바 혁명이 일어나 음악 활동의 맥이 끊깁니다. 1959년부터 혁명 정부는 도시의 문화 생활이 향락적이라 비판하면서 대부분을 통제했어요. 피델 카스트로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한 이후에는 이전에 유행하던 노래와 음악은 찾아볼 수 없게 됐죠. 쿠바 전통 음악 대신 사회주의 이념을 담은 포크송이 정부 지원 아래서 유행하게 됐어요. 쿠바인들은 사회주의 정책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강요받고 과거를 잊게 됐죠.

    원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환영받는 사교 클럽'이라는 뜻으로, 1940년대 쿠바 아바나에 있던 가장 유명한 사교 클럽이었어요. 쿠바 혁명 이후 사교 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연주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탈냉전으로 시대 상황이 변하면서 이들이 다시 활동하게 됩니다.

    1995년 40년 만에 다시 모인 음악가들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음반을 제작했어요. 1999년에는 이들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세계에 널리 알려졌어요. 현재는 '쿠바 음악'이라 하면 다들 이들 곡을 떠올릴 정도예요. 40년 만에 70대 이상 나이가 들어 만난 연주자들은 과거를 어떻게 떠올릴까요? 돌아온 쿠바 음악의 황금기는 연주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요.

    민속 음악에서 탄생한 '누에바 칸시온'

    1960~1970년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척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이 유행했어요. 이 음악은 안데스 전통 음악을 비롯해 민속 음악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어요.

    누에바 칸시온은 당시 사회주의 진보 운동과 연결돼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어요. 혁명과 반제국주의, 반미 이념을 바탕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죠.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와 칠레의 비올레타 파라가 대표적 가수예요. 우파 군사정권 아래서 핍박받아 '누에바 칸시온' 가수들은 국외로 망명하기도 했어요.
    기고자 :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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