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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 자원봉사가 남긴 세 가지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발행일 : 2023.09.12 / 기타 E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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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재난 시대의 자원봉사

    25일간 5만명이 움직였다.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7일까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폭우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수해복구를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5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지난 한 해 국내 재난 대응에 투입된 자원봉사자 수가 7만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숫자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등 올여름 수해는 수십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겼다. 폭우에 이어 찾아온 극심한 폭염은 재난 복구에 어려움을 더했다. 김의욱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은 "악조건 속에서 자원봉사자 수는 오히려 늘었고 각지의 자원봉사센터는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협력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다"며 "이번 여름 자원봉사자들의 수해복구 활동은 기후위기로 인한 '중복 재난' 시대의 자원봉사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남겼다"고 했다.

    중복 재난 시대, 자원봉사자의 '안전'을 확보하라

    올여름 수해는 충북 청주·괴산, 경북 북부 지역인 봉화·예천·영주 지역에 집중됐다. 특히 청주에는 사흘간 500㎜ 넘는 비가 쏟아져 미호강이 범람했고 주택과 농지가 침수됐다. 15일 청주 흥덕구 오송읍에서 발생한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예천에서는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주민 15명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봉화와 영주에서도 비닐하우스가 쓰러지고 논밭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소식을 들은 자원봉사자들이 각지에서 수해복구를 위해 모여들었지만 곧 전국적인 폭염이 닥쳤다. 청주의 경우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발생한 15일에는 호우경보와 홍수경보가, 나흘 뒤인 19일부터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21일에는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았다. 다른 지역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폭염이 찾아온 수해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은 안전을 위해 조끼와 장화, 긴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고 복구를 진행했다. 가장 힘든 곳은 그늘 한 점 없는 논밭이나 바람이 통하지 않는 비닐하우스였다. 자원봉사자들은 땅에 나뒹구는 농사용 비닐과 농기구 등 폐기물을 처리하고 썩은 농산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김선용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전략사업팀장은 "숨쉴 때마다 콧속으로 뜨거운 열기가 들어와 작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수해와 폭염이 겹친 상태에서 대규모 인원이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상황은 센터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자원봉사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폭염이 발생한 날은 오전에만 작업하기 ▲비닐하우스에서는 10분 일하고 5분 쉬기 등 자원봉사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에 둔 활동 가이드를 만들어 현장에 적용했다. 대신 수해복구 속도는 느려졌다. 하선민 청주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지난해만 해도 하루에 5~6시간씩 일하면서 한 집 복구를 마쳤는데, 올해는 하루에 2~3시간밖에 일을 할 수 없으니 같은 집에 2, 3일씩 더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포도당 캔디와 이온음료, 생수 등은 평소보다 더 넉넉하게 배부했다. 다만 물조차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현장도 있었다. 간이 화장실까지 떠내려간 밭에서 복구 활동을 진행한 자원봉사자들은 화장실이 급해질까 봐 물을 아껴 마셔야 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재난 전문가들과 협의해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자원봉사 매뉴얼을 다시 만든다는 계획이다. 김의욱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은 "자원봉사자의 휴식이나 쉼터 등에 대한 지침이 있었지만 복구 현장이 시급하다 보니 잘 지켜지지 않는 면이 있었고, 특히 올해 같은 극단적인 기상 조건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자원봉사자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게 올해 수해복구 활동이 남긴 첫 번째 교훈"이라고 말했다.

    산불 이재민이 수해 이재민을 돕다

    경북 포항 남구 대송면에 사는 엄명자(59)씨는 지난 7월 20일 청주에서 수해복구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대송면은 지난해 여름 태풍 힌남노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아파트 1층에 사는 엄씨 집도 폭우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엄씨는 그날 저녁 남편과 대피소로 지정된 인근 교회로 피신했지만 코로나 환자가 나오는 바람에 다음 날 나와야 했다. 엄씨 부부는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집으로 복귀했다. 축축한 마룻바닥에 텐트를 치고, 신문지를 깔고 한 달 반을 지냈다. 낮에는 군인들이 침수된 가전제품과 가재도구를 버리는 등 집 청소를 도와줬다.

    엄씨는 "올해 수해 난 지역을 보니 꼭 내 집이 망가진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면서 "내가 받은 도움만큼 꼭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봉사를 신청했다"고 했다. 이상섭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작년에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이번엔 내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문의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고 말했다.

    올해 수해복구 기간 전국 자원봉사자센터들은 재난을 겪으며 얻은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복구의 효율성을 높였다.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자들은 고압세척기와 발전기를 따로 준비해 청주로 갔다. 침수된 빌라 10가구의 가재도구를 빠르게 닦아냈다. 2019년 이후 거의 매년 산불과 태풍 피해를 입은 강릉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은 청주와 강원 고성의 침수 피해 복구를 도왔다. 고성은 태풍 카눈의 피해를 입은 지역. 강릉시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자들은 고성군에 도착해 보일러 수리부터 했다. 김선정 강릉시자원봉사센터장은 "보일러를 고쳐서 집 안을 말려야 도배하고 장판을 깔 수 있다"며 "그간 폭설, 산불, 태풍 등 각종 재난을 겪으면서 얻은 노하우"라고 말했다.

    센터 간 공조는 점점 체계화되고 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재난 시의 '거점'을 만드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전국을 강원권·영남권·전라권 등 5개 권역으로 나누고 거점 지역에 '책임 자원봉사센터'를 만든다. 여기에 이재민용 에어텐트(쉘터)와 개인 물품 보관용 박스 등 장비를 보관할 예정이다. 인근 지역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으로 장비들을 신속하게 운송해 현장을 지원할 수 있다. 재난이 발생하고 하루 이내에 대피소에 에어텐트 설치를 마치는 게 목표다. 전국의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시민 연대와 협력이 더욱 정교해지고 조직화되고 있다는 게 이번 수해복구 자원봉사의 두 번째 교훈이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1인 노인 가구 문제다. 기후재난은 고령 인구가 많이 사는 농산어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고령자들은 재난이나 재해 발생 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선정 강릉시자원봉사센터장은 "산불 피해가 잦은 우리 지역에도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많다"면서 "고령으로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이 많아서 산불이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해가 뜬 줄 아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폭설이나 폭우로 고립될 경우에는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김의욱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은 "기후위기로 재난이 더욱 빈번해지고 예측도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번 수해복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5만명의 활동이 체계적으로 발전한다면 기후위기 시대의 효과적인 시민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수해 지역을 찾은 자원봉사자의 수
    기고자 :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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