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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에 한 번 오는 기회"… 日, 반도체 부활 총력전

    유지한 기자

    발행일 : 2023.09.12 / 경제 B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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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 갈등 속, 최근 日 대표기업 8곳 합작 반도체 기업 공장 착공

    지난 1일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지토세에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과 미국 어플라이드머터리얼즈, 램리서치 임원 등 반도체 업계 관계자 130여 명이 모였다. 신생 일본 반도체 연합 기업 라피더스의 2나노(nm·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장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라피더스는 지난해 8월 '반도체 강국 부흥'을 외치며 도요타·소니·키옥시아 등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합작해 만든 연합체다. 일본 기업은 원래 신중한 투자에 익숙하지만 라틴어로 '속공, 역습 의지'를 의미하는 사명답게 라피더스는 과감한 투자와 인력 양성으로 오는 2027년 2나노급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내걸었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강자 삼성전자·TSMC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토세는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일본이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본격 시동을 걸었다. 미국 대중(對中) 제재와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한국·대만에 빼앗겼던 반도체 시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엄청난 투자금을 쏟아붓고 성장 동력이 떨어진 일본 기업들도 화답하듯 공장 신설과 연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반도체 강국으로 간다

    정부 지원금 3300억엔(약 3조원)을 받은 라피더스는 설립 약 1년 만에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2025년 4월 시험 생산을 시작해 2027년 본격 양산이 목표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성능이 높고 전력 소모가 적어 이를 위한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2025년 2나노 양산을 목표로 밝히고 있는 만큼, 라피더스의 공장 건설은 단숨에 세계적인 기업 반열에 오르겠다는 거창한 계획인 것이다. 고이케 아츠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기공식 후 "1000년에 한 번 오는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의 야심에는 지정학적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대만은 중국 리스크가 크고, 한국도 핵심 시설이 중국에 있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일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첨단 반도체 제조 핵심 장비 23개에 대한 대중 수출 제한을 시행하면서 미국 제재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라피더스는 미 IBM과 협력해 기술 부족을 메울 계획이다. 리오 길 IBM 수석부사장은 "라피더스와 협력해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함으로써 미국·일본·유럽 등 지리적으로 균형 잡힌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명운을 걸고 반도체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소재 대기업 섬코가 신설하는 실리콘웨이퍼 공장에 750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일본 국부펀드 산업혁신투자기구(JIC)는 포토레지스트 분야 점유율 30%를 가진 JSR을 매수한다. 내년 4월부터는 일본 내 생산한 반도체에 대한 세금 감면 정책도 추진할 계획이다.

    ◇기술력 한계 여전한 日 기업

    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본이 기술 격차가 큰 한국·대만을 빠른 시일 내에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에 3대 메모리 기업을 보유한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한국·대만에 밀리면서 쇠약해졌다. 3나노 반도체를 양산 중인 삼성과 TSMC는 1나노 기술 개발에도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일본 반도체 기술은 TSMC가 15년 전 도입한 40나노에 머물러 있다. 특히 일본의 최대 약점은 독자적인 첨단 반도체 설계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협력 중인 IBM이 일본과 기술을 공유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삼성전자·TSMC와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인재 확보도 문제다. 라피더스는 약 200명을 채용했고 2027년에는 직원이 1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엔저로 해외에서 숙련된 전문가를 채용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국내 전문 인력도 사라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정부 혼자 1970년대식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반도체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일본의 반도체 부활 프로젝트 / 일본 반도체 산업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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