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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김윤지 박사의 한류 경제 분석

    방현철 경제부 차장·경제학 박사

    발행일 : 2023.09.12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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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성공 바탕은 벤처 정신, 반도체·자동차 산업처럼 키우면 꽃 못피워

    빌보드 1위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 넷플릭스 1위 드라마 '오징어게임', 아카데미상 4관왕 영화 '기생충'…. K팝, K드라마, K무비 등 K콘텐츠(한류)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과거 '딴따라'라며 국내서도 대접 못 받던 한국 대중문화가 어느새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이 됐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수십 년에 걸친 한국 정부의 야심 찬 계획으로 한류가 한국 대표 상품이 됐다는 서구의 시각을 전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한류는 개방 압력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생적으로 커온 산업으로 보는 관점이 많다. 한류와 K콘텐츠에 대해 13년 넘게 경제적 분석을 해온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김윤지 박사를 지난 1일 만나 한류의 '성공 공식'이 뭔지 얘기해봤다.

    ―왜 한류를 경제적으로 분석했나.

    "2010년대 들어 K팝, K드라마 등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한류 호응이 크면 무조건 '1조원 이상 효과'란 말이 언론을 장식했지만, 근거는 딱히 없었다. 그래서 정확한 추정을 해보고 싶었다. 2012년 한류 수출의 파급 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분석해봤다. 당시 한류 수출이 100달러 늘면, 소비재 수출이 412달러 늘어난다는 숫자를 처음 제시했다."

    ―대중문화계와 보는 시각이 다른가.

    "미디어 학자들은 한류 내용이 뭐고, 어떤 점 때문에 대중이 호응했는지 많이 본다. 경제학자들은 내용 자체보다 '어떤 제도나 환경 때문에 이런 산업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성장할까' 등에 더 관심이 많다. 제도경제학적 관점에서 어떤 제도와 환경 변화가 한류를 성장하게 만들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더불어 경제 파급 효과도 따져 본다."

    가내수공업이던 대중문화의 산업화

    ―한국 대중문화가 산업화된 이유는.

    "개방 충격에 대한 대응이었다. 한국 대중문화 중 가장 먼저 산업화의 길을 간 건 영화다. 개방 충격에 정부나 기업이 대응을 잘 못하면 그 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가내수공업적으로 국내용 영화만 만들던 영화 산업이 할리우드 직접 배급 충격으로 오히려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처음엔 개방에 반대하며 영화인들이 극장에 뱀도 풀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개방에 맞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문화에 주목했고, '영화 쥬라기 공원 1년 수익이 우리 차 150만 대 수출과 같다'는 말을 꺼내 한류를 '딴따라'로 보던 시각에서 '산업'으로 바꿔 보게 했다. 여기에 벤처 투자 활성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영화 투자에도 벤처 투자와 똑같은 혜택을 줬다. 새로운 영화 기획자들이 등장하고 민간 투자가 유입되는 물꼬를 트면서 영화부터 산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등과 한류의 차이는.

    "한국 수출의 주력인 중후장대 산업은 자본집약적이다. 그래서 특정 산업 육성을 위해 수행할 대기업을 선정하고 은행의 장기 저리 대출과 정책 자금을 통해 자본 시설을 크게 만들어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문화 산업은 큰 회사가 하는 게 아니고, 생산 시설이 중요한 산업이 아니다. 자본 투자를 하려 해도 딱히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가 막막하다. 그래서 한류를 중후장대 산업처럼 정부가 설계하고 투자하고 이끌어 갔다고 얘기하는 게 맞지 않는다."

    ―한류의 투자 대비 수익은.

    "수익 변동이 다른 산업보다 훨씬 크다. 예컨대 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2016년엔 30%에 육박했지만, 코로나 때인 2020년엔 마이너스(-) 30%였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보통 10개를 투자해서 한두 개 정도에서 높은 수익을 얻어 나머지 8~9개의 적자를 보전한다. 한두 개 성공으로 대박이 날 수도 있다. 벤처 투자 자금에 맞는 산업이라 볼 수 있다. 대기업이 한류에서 쉽게 성공할 수 없는 이유다."

    해외 진출로 살길 찾았다

    ―한국 대중문화는 왜 해외로 갔나.

    "위기에 대한 대응이었다. K팝이 먼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외로 나갔다. 당시는 MP3 보급으로 음반 시장이 충격을 받던 때였다. 한국 대중음악 기업들은 음반 수익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는데, MP3로 음반 수익이 크게 떨어지자 돌파구로 해외시장을 주목했다. 그런데 해외 진출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이때 벤처 자금 통로인 코스닥 시장이 역할을 했다. 예컨대 SM이 2000년 코스닥 등록에 성공하면서 그 돈으로 겨우 2000년대 초반 보아의 일본 진출에 성공했다. 드라마는 1998년 IMF 외환 위기로 외환이 부족한 대만, 동남아시아 등에서 한국 드라마를 찾게 된 게 계기였다. 달러가 절실했던 한국도 드라마 수출이 필요했다."

    ―IT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지형을 바꾼 것도 영향을 줬을 것 같다.

    "K드라마는 200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각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데 큰 덕을 봤다. 방송 전파를 타는 건 시청자가 어느 정도 확보돼야 가능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런 제한이 없었다. 더욱이 2010년대 중반엔 넷플릭스가 생기면서 K드라마의 전 세계 유통이 아주 쉬워졌다. K팝은 유튜브나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일본을 벗어나 북미나 유럽까지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소셜미디어 없이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빨리 확산될 수 없었다. 또 K팝은 노래와 댄스가 결합됐기 때문에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 덕을 많이 봤다."

    ―한류에 앞서 일본, 홍콩이 아시아 대표 대중문화 아니었나.

    "일본 문화 산업의 특징은 강력한 내수 시장이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려는 움직임이 덜했다. 내수 위주다 보니 1990년 중반 이후엔 일본 대중문화가 해외 경쟁력을 잃게 된다. 1998년 우리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했지만, 그 영향이 거의 없었던 게 방증이다. 홍콩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영화 붐이 일었는데,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 해외 투자 자본이 확 빠지면서 힘을 잃었다. 좋은 감독들은 할리우드로 가 버렸다. 그 틈새에서 한류가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AI 시대, 한류와 K콘텐츠의 미래는

    ―초대형 K콘텐츠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현재 많은 K팝 기획사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보면 자회사를 40~50개씩 갖고 있다. 이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와 좀 다르다. 각각 스타일을 가진 회사 내 부서 같은 단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다양한 창작자들이 각자 스타일을 갖고 일하는 형태가 K콘텐츠 산업이 성공하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벤처기업들이 하나의 지붕 아래 뭉쳐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열 개 중 한두 개가 성공하는 시스템이다. 초대형 K콘텐츠 기업이 나온다면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될 것 같다. 대량 생산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 생산 같은 스타일이다. 한류가 벤처 정신을 바탕으로 성공한 만큼 앞으로 K콘텐츠도 벤처 정신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AI(인공지능)가 콘텐츠 만드는 시대에도 K콘텐츠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앞으로 콘텐츠 제작에 AI가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고, 한국도 높아가는 제작비를 AI로 줄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류가 할리우드 작품에 견줘 경쟁력을 얻게 된 건 그들이 가지지 못한 독특한 시각과 관점이었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음악이 반복되는 건 대중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AI는 창작자들을 보완해 주는 수단 정도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현재 K콘텐츠는 세계에서 아주 독특한 특성을 담고 있는 대중문화 흐름인데, 이걸 놓게 되면 AI가 아니어도 살아남기 어렵다."

    ―한류는 정부 지원의 결과인가.

    "한류는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말하면 '모든 게 우연이란 얘기냐'라는 반문이 나온다. 그런 얘기는 아니다. 모든 걸 정부가 정책적으로 설계해서 그 계획대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뜻이다. 창작자, 기업, 정부 등 개별 주체들이 다 조금씩 노력을 해서 성공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외환 위기나 IT 발전 등 외부 환경 변화도 중요한 영향을 줬다."

    ―그러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대중문화 산업은 작은 기업들 중심인 만큼, 벤처 자금과 같은 자본이 잘 흘러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 또 정부 정책은 기업을 지원하는 데 타깃을 두지 말고 창작자들을 중심에 둬야 한다. 실패한 창작자도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은 2000년대 초반 첫 번째 작품에 실패하고 두 번째에서 성공했다. 당시 실패해도 생존할 수 없었다면, 지금의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윤지 박사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문화콘텐츠산업, 경제정책, 중소기업 연구 등을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 '한류 외전' '박스오피스 경제학' '한류노믹스(공저)'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공저)' 등이 있다.

    [그래픽] 전세계 한류팬 수 추이
    기고자 : 방현철 경제부 차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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