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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 가는 날이 휴무!" 대형 마트 이용자 60%가 헛걸음했다

    배준용 기자

    발행일 : 2023.09.09 / 주말섹션 B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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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배송만 덕 봤다" 재점화된 마트 강제 휴업 논란

    "쉬는 날 여유가 있어 '마트나 좀 가볼까' 하면 꼭 휴무예요. 당연히 열었을 거라 생각하고 갔다가 닫힌 걸 보면 저도 모르게 화가 나더라고요."

    부산에 사는 회사원 박모(33)씨는 대형 마트 의무 휴업에 불만이 크다. '머피의 법칙'이 꼭 마트 가는 길에 따라붙는다고. 박씨는 "사실 '새벽 배송'으로 필요한 식료품을 대부분 구입하긴 한다"면서 "그래도 주말에 모처럼 가족끼리 장 보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려 하면 꼭 휴무일에 걸려버리니, 대체 누굴 위한 규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매달 두 번 반드시 문을 닫아야 하는 대형 마트 의무 휴업 제도가 도입된 지 어느덧 11년. 재래시장과 지역 상권, 중소 상인을 보호하자는 취지지만, 정작 소비자들 사이에선 "상권 보호 효과는 없고 소비자 불편만 키운다"는 불만이 이어져 왔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온라인 배송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심지어 대형 마트 규제를 주장하던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도 "대형 마트 휴업의 취지가 거의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의무 휴업 폐지 46%, 유지 39%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후 대형 마트는 갖가지 규제에 걸렸다. 매달 두 번은 반드시 휴업해야 하고, 자정부터 오전 10시 사이에는 영업할 수 없다. 휴업일 때는 온라인 배송도 금지된다. 전통 시장에서 반경 1㎞ 이내에는 3000㎡(약 908평) 이상의 마트가 들어설 수 없다.

    이렇다 보니 무심코 주말에 마트를 찾았다가 강제 휴무로 헛걸음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아무튼, 주말'이 지난달 SM C&C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20~60대 남녀 502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마트에 갔는데 의무 휴업이라 헛걸음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2%가 "우리 동네 대형 마트 휴무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했음에도 무심코 마트에 갔다 허탕 친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여당과 지자체들은 의무 휴업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이 "각종 '킬러 규제'를 철폐하라"며 대형 마트 의무 휴업 폐지를 거론했고, 이후 관계 부처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지자체들은 휴무일을 공휴일에서 평일로 옮기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지난 2월 마트 의무 휴업일을 둘째·넷째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변경했고, 충북 청주시도 수요일로 옮겼다. 대형 마트의 경쟁자로 여겨지던 전통시장연합회와 수퍼마켓협동조합 등도 휴무일 변경에 동의했다. "온라인 배송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면 상권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재래 상권 대 대형 마트'의 경쟁 구도가 아닌,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유통산업의 경쟁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는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을 폐지하자'는 응답이 46%로 '유지하자'는 응답(39%)보다 7%p 높았다. '모르겠다'는 입장은 15%였다. '폐지하자'는 응답자 중에서는 "소비자 불편이 크다"는 이유가 54%로 가장 많았고 "온라인 배송 등 다른 유통 경로가 많다"가 25%, "지역 상권 보호에 도움이 안 된다"가 21%를 차지했다.

    의무 휴업 수혜자는 온라인 배송 업체

    대형 마트가 의무 휴업과 온라인 배송 금지 등에 묶여 정체된 사이 '새벽 배송'으로 불리는 온라인 유통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유통산업 중 대형 마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에 27.8%였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13.3%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온라인 시장은 28.4%에서 49.8%로 크게 늘었다. 대형 마트를 규제하면 조금은 살아날 거라 기대했던 전통 시장도 산업 내 규모가 점점 축소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대형 마트 규제가 취지와 달리 전통 시장에 오히려 손해를 끼쳤고, 온라인 배송 업체만 덕을 봤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상반기 대한상공회의소가 유통 물류 관련 학회 4곳에 소속된 전문가 108명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70%가 "대형 마트와 보호 대상인 전통 시장에도 손해였다"고 답했고, 77%가 "전통 시장 활성화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전통 시장에 이득이었다"는 답변은 13%에 그쳤다. 대형 마트 규제로 반사이익을 본 업종에 대해 전문가의 58%가 온라인 쇼핑을 꼽았다. 무려 83%가 "대형 마트 관련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형 마트와 중소 상인들이 대면 상권을 살리기 위해 대형 마트 관련 규제를 해제하는 데 합의했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지난해 말 정부와 대형 마트, 수퍼마켓, 중소 상인 관련 단체가 2년여의 협의 끝에 대형 마트의 휴무일과 새벽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고, 대신 대형 마트가 중소 상인의 물류 시설 현대화와 마케팅을 지원하는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위 회의에서 민주당은 "골목 상권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상생 협약을 위한 규제 완화에 반대했다.

    마트 노조도 정부의 의무 휴업 폐지와 지자체들의 의무 휴업일 변경에 반발하고 있다. 의무 휴업을 통해 마트 근로자의 휴무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의무 휴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 중 38%가 이유로 "마트 근무자의 휴일 보장"을 꼽았다. 지역 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답변이 33%, 현 제도로 별다른 불편이 없다는 답변이 29%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 경쟁력이 좋은 온라인 배송이 이미 대형 마트를 압도하고, 가구 형태가 소규모로 변하면서 대형 마트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근무자 휴무보다 대형 마트의 생존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의무 휴업, 온라인 배송 금지 등 각종 규제를 풀어 소비자 불편을 줄이고 신선도 유지에 노하우가 있는 대형 마트의 경쟁력을 활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 대형 마트 휴업 이대로 괜찮은가
    기고자 :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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