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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욱의 호모 코쿠엔스] 연남동 '진가(陳家)'

    양세욱 인제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발행일 : 2023.09.09 / 통판 B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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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트럴 파크'의 감성을 중화요리 주점에 옮겨 담다

    중식당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온종일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즐겁지 않은 저녁 자리는 드물지만, 중식당처럼 흥분까지 일지는 않는다. 중식당 식사 인원은 네다섯 명이 적당하다. 세 명 이하면 다양한 메뉴를 맛보기 어렵다. 여섯 명이 넘으면 이미 회식의 범주로 넘어간다. 오늘의 인원은 다섯 명, 장소는 연남동 '진가'다. 업계의 소문난 실력자 진생용 셰프가 운영하는 중화요리 주점이다. 중국 산서성 행화촌에서 생산되는 청향형(淸香型)의 전통 명주 분주(汾酒)가 반주로 곁들여질 예정이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연트럴 파크'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연트럴 파크는 홍대입구역에서 가좌역이 있는 연남사거리까지 850m 남짓 이어지는 경의선 숲길 연남동 구간을 부르는 별명이다. 서울역을 출발해 개성,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달리는 경의선 전 구간은 1906년에 개통되었다. 영화 '밀정'에서 상해를 출발한 의열단 단원들이 갖은 곡절을 겪으며 경성으로 돌아오던 그 노선이 바로 경의선이다.

    6·25전쟁과 함께 운행이 중단되고 도심을 달리던 구간마저 지하화되자 폐선로를 숲길로 조성하기 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개통 110주년인 2016년에 완공된 이 숲길은 이미 서울의 핫플레이스다. 평일인데도 젊은 남녀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숲길에 가득하다. 유동 인구가 넘치는 연남동에는 이름난 중식당도 많다. 미슐랭가이드가 주목한 남복춘 셰프의 '중화복춘'이 숲길 서편에 있고, 왕육성 셰프의 '진진', 이연복 셰프의 '목란', 정지선 셰프의 '티엔미미'도 멀지 않다. 진생용의 '진가'는 숲길 바로 동편에 자리를 잡았다.

    진생용은 강원도 영월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던 산둥성 출신 아버지를 따라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강인한 인상과 달리 겸손이 몸에 밴 진생용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면판, 칼판, 불판을 차례로 맡으며 긴 수련 과정을 겪었고, 조선호텔을 비롯한 여러 고급 호텔들에서 주방장으로 경력을 쌓았다. 은둔 고수 진생용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계기는 이연복, 여경래, 유방녕과 함께 중식 사대문파로 소개된 '강호대결 중화대반점'(2015)이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진생용이 자신의 성을 딴 식당을 개업한 때도 숲길이 완공되어가던 2015년 12월의 일이다.

    진가에는 화상 특유의 분위기가 거의 없다. 진생용이 이름난 호텔들을 두루 거친 때문이다. 장폭팔보채, 유자탕수육, 낙지삼선누룽지탕, 깐풍가지, 대게살유산슬, 전복고추잡채처럼 호텔 요리를 술안주로 재해석한 요리들이 메뉴판을 채우고 있다. 친숙한 식재료를 고급 요리로 탈바꿈시키는 연금술이야말로 요리의 본령이다. 금, 토, 일요일에는 1만원 안팎으로 잡채밥, 마파두부밥, 가지덮밥, 게살볶음밥 등을 맛볼 수 있는 점심 메뉴도 선보인다.

    진가가 아니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대표 메뉴는 역시 '두반가지새우'(4개 1만7000원, 6개 2만5000원)다. 갖은 양념을 더한 새우와 부추로 속을 채운 가지를 바싹 튀기고 특제 두반장 소스를 얹어낸 요리이다. 누에콩과 절인 홍고추를 섞어 발효시킨 두반장은 마파두부나 탄탄면, 훠궈 같은 사천 요리에 두루 쓰이는 장류이지만, '두반가지새우'에 얹히는 두반장은 진가만의 비법이 더해져 진한 감칠맛을 낸다. 새우도 통새우와 다진 새우를 함께 써서 고유의 식감과 향이 함께 살아 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대를 이어가는 식당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요리사의 위상이 높아진 때문이다. 어느 부모가 존중받지 못할 일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겠는가. 진가도 가족 기업이다. 아내와 장남이 카운터와 서빙을 맡고, 경희대에서 호텔조리학을 전공한 둘째는 주방을 돕는다. 8대째 이어온 우동집,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소바집이 있는 일본처럼 우리나라에도 대를 잇는 백년 가게들이 늘어가길 소망한다.
    기고자 : 양세욱 인제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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