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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무법의 바다

    곽아람 기자

    발행일 : 2023.09.09 / Books A1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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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 어비나 지음박희원 옮김|아고라784쪽|3만2000원

    인신매매, 선원 학대, 어류 남획, 쓰레기 투기…. 망망대해의 배 위에서 일어나는 각종 불법행위를 파고든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저자 이언 어비나(51)의 이력이다. 그는 2009년 퓰리처상(속보 보도 부문)을 받은 뉴욕타임스 기자. 시카고대학에서 사학과 인류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박사과정 5년 차에 해양 조사선 상주 인류학자로 일하러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선원 및 어민들과 어울리며 해상의 불법행위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사 논문을 끝내지 못하고 2003년 뉴욕타임스에 입사한 후에도 '바다'라는 주제를 놓지 않았다. 끈질기게 회사를 설득한 끝에 2015년 7월 '무법의 바다(The Outlaw Ocean)' 시리즈 연재를 시작한다. 2017년 1월부터 15개월간 휴직하며 책을 쓰기 위한 추가 취재를 했다. 이 책은 비행기 85대를 타고 전 대륙 도시 40곳을 누비며 40만4000㎞를 취재하고, 오대양과 다른 부속해 20곳을 넘나들며 1만2000해리를 탐험한 결과물이다.

    800쪽 가까운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해상 노예'를 다룬 챕터다. 저자는 목에 녹슨 쇠고랑을 차고 태국 국적 어선에 사슬로 묶여 있던 캄보디아인 남성 랑 롱(30)의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롱은 태국 내 건설업 일자리를 제안하며 입국을 도와주겠다는 브로커의 꼬임에 넘어가 3년간 바다 위에 감금됐다. 브로커는 물소 한 마리 시가보다 낮은 액수인 약 530달러에 롱을 한 선장에게 팔았다. 이후 롱은 다른 어선으로 두 번 더 팔렸다. "이 업계는 노예 노동과 가학 행위가 만연한 곳, 인간이 바다에서 끌어올리는 상품으로 취급되는 곳이다."

    저자는 태국 선망선에 올라 '해상 노예'의 현실을 취재한다. 40명의 캄보디아 선원 중 열다섯 살도 안 돼 보이는 소년들도 있었다. 비위생적인 식사, 쥐가 들끓는 잠자리, 습관적인 임금 체불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다. 저자가 인터뷰한 한 선장은 "조업 막판에 손이 부족하면 노동자에게 마약을 주거나 납치해 강제로 배에 태운다"고 고백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2014년 유엔 발표에 따르면 태국 수산업계는 평년 기준으로 선원 5만명이 부족하다. 태국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청년들은 더 이상 원양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 수산업계는 미얀마와 캄보디아, 라오스 출신 노동력에 의존한다. 이들은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국경에서 항구로 들어오는데,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선장에게 진 빚으로 남는다.

    아픈 선원을 배 밖으로 던지고 반항하는 선원을 참수하며, 불법으로 포획한 상어를 암거래하는 '무법의 바다' 위에 "확고한 신념을 품고 해사 법규의 묘한 지점을 일종의 비기로 활용해 자신의 의제를 밀어붙이는 다른 부류가 소수 존재한다." 해사 법규에 따르면 공해상의 배 위에서 적용되는 법은 그 배가 등록된 나라의 법뿐이다. 네덜란드 의사 레베카 홈퍼르츠는 이 지점을 이용, 의료선을 개조해 세계를 누비며 낙태가 불법인 지역의 여성들에게 공해상에서 약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시술을 해 준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홈퍼르츠가 '죽음의 배'를 몬다고 공격하지만, 홈퍼르츠는 이렇게 말한다. "임신 중지는 금지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요. 지하로 몰릴 뿐이죠." 실제로 멕시코에서는 매해 1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여성들이 비밀리에 낙태 시술을 받는다. 이런 처치의 3분의 1 이상은 감염과 자궁 손상, 출혈, 자궁 경부 천공 등을 비롯한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끈질긴 탐사, 꼼꼼한 취재, 정교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수작(秀作)이다. 한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다룬 챕터는 특히 우리 기업 및 정부 관계자들에게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바다를 규율하는 법은 부족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느슨한 집행"이라며 저자는 말한다. "바다가 무법 상태인 것은 바다의 본질이 선하거나 악해서가 아니라, 소리에 반해 침묵이 그렇고 활동에 반해 권태가 그렇듯 이곳이 공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바다에서 솟아나는 생명을 수용하고 상찬해 오면서도 타락을 숨겨주는 이곳의 역할에는 대체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그랬듯 무법의 바다는 실재한다. 이 사실을 마주 대하기 전에는 이 프런티어를 길들이거나 보호하는 일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기고자 :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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