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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무효판결에도(2015년)… '성공보수' 받는 로펌들

    방극렬 기자

    발행일 : 2023.09.07 / 사회 A1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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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명목 내세운 편법 동원

    형사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불구속이나 무죄를 받아주겠다며 의뢰인에게 거액을 요구하는 '성공 보수'는 국내 법조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지난 2015년 대법원이 "성공 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지금도 각종 명목으로 사실상 성공 보수를 받아가는 편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변호사가 '약속한 성공 보수를 달라'고 하자 의뢰인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주지 않아도 된다'며 소송을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요즘 성공 보수는 변호사 수임 계약서에 '구속되면 수임료 일부를 돌려주겠다' 등의 특약 조항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겉으로는 성공 보수를 별도로 정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놓고 실제로는 수임료 속에 성공 보수를 포함시켜 둔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중대형 로펌 A는 지난 2021년 마약 매수·투약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의뢰인에게 수임료 6600만원을 받았다. 항목별로는 계약금 600만원, 중도금 3000만원, 잔금 3000만원이라고 계약서에 기재했다. 그러면서 "법정 구속 시 잔금 3000만원을 반환하기로 한다. 다만 선임 이후 마약 사건이 발생하면 잔금을 반환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넣었다. 성공 보수는 안 받는 것처럼 돼 있지만 잔금 3000만원이 숨겨진 성공 보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재판 막바지에 의뢰인이 다른 마약 범죄로 구속되면서 성공 보수를 둘러싸고 분쟁이 생겼다. A 로펌이 "의뢰인이 선임 이후 마약 범죄를 새로 저질렀으니 특약에 따라 이미 받은 잔금을 반환하지 않겠다"고 하자, 의뢰인이 "잔금은 실제로는 성공 보수로 약속한 것인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그 약속 자체가 무효"라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지난달 1심 재판에서 "이 사건의 잔금 반환 약정은 성공 보수에 해당해 무효"라며 로펌이 의뢰인에게 3000만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다른 중대형 로펌 B는 사기·사기미수·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횡령 등 5개 혐의가 문제된 형사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 시 수임료 1억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의뢰인과 계약을 맺었다. 의뢰인은 4개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를 받았지만 나머지 1개 혐의는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도 성공 보수를 놓고 다툼이 일어났다. B 로펌은 의뢰인에게 "대부분 피의 사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니 약속한 보수 중 5000만원을 달라"고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해당 특약 사항은 수사 결과를 금전적 대가와 결부시킨 성공 보수로 무효"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고, 작년 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성공 보수 약정 자체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계약은 무효'라는 민법 103조를 적용한 것이다. 이후 의뢰인이 성공 보수를 변호사에게 미리 지급했더라도 이는 부당 이득이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도 나오고 있다.

    한 법조인은 "대법원은 성공 보수에 대해 '수사·재판 결과를 금전과 결부해 사법 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판결했다"면서 "지금도 편법으로 이뤄지는 성공 보수 약정은 대법원 판결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이나 프랑스는 19세기부터 형사 사건뿐 아니라 민사 사건에서도 성공 보수 약정을 무효로 취급하고 있다. 미국도 대부분의 주(州)가 형사 사건에서 성공 보수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성공 보수 약정이 허용되지만 전체 사건에서 성공 보수가 책정되는 비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 법원이 무효로 판결한 '편법' 성공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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