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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골든타임 놓쳐 결국 범죄… 여기 오기 전 예방해야"

    공주=구아모 기자

    발행일 : 2023.09.07 / 종합 A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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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질환 범죄자 최후 보루' 국립법무병원 박재상 의료부장 인터뷰

    지난달 31일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세종시에서 20여 분간 인적이 없는 산간 도로를 따라 달리자 사방이 산뿐인 병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주변은 높이 5m의 철제 펜스로 둘러져 있었다. 병실 창문마다 철창살이 쳐 있었다.

    이곳 국립법무병원은 범죄를 저지른 정신 질환자(범법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는 국내 유일의 재소자 대상 정신병원이다. 중증 정신 질환 범죄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의 분투(奮鬪)가 매일 벌어진다. 박재상(57)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은 이 병원에 입원한 796명의 범법 정신 질환자를 총괄 관리하고 있다. 범법자들을 치료하고, 수사기관에서 의뢰하는 정신감정도 진행한다.

    이날 오전 박 부장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감정 대상자의 수사 기록지, 과거 의무 기록, 정신건강의학책 등이 쌓여 있었다. 사무실 한편에는 '仁術濟衆(인술제중·인술로 아픈 사람들을 구한다)'이라고 적힌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었다.

    박 부장은 오전 7시 피의자 정신감정 작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범행을 저질렀을 때, 정신병적 요소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박 부장은 "이곳은 중증 정신 질환 범죄자들의 최후의 보루와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 입원한 환자들의 과거 이력을 살펴보면 여러 차례 치료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거나, 도중에 치료를 중단하는 등 정신 질환을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끝끝내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야 결국 이곳에 치료를 받으러 온다"고 했다. 박 부장은 "드러나는 병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하지만 치료를 넘어 중증 정신 질환자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사회적 차원에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박 부장은 한양대 의대를 졸업해 1994년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국립법무병원이 '치료감호소'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박 부장은 "이곳엔 자신을 돌봐주던 가족을 해친 사람이 많다"고 했다. 박 부장은 20여 년 전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한다. 자신을 돌봐주던 어머니를 살인했지만,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명문대 학생이었다.

    박 부장은 "그 학생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안 죽였다고 망상을 강화하고 있었다"며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망상까지 없앨 정도로 완전히 치료해 버리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까 봐 치료하는 내내 고민스러웠다"고 했다. 박 부장은 환자의 조현병을 치료했지만,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망상은 없애지 않았다고 한다.

    범법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는 현장은 늘 위험하다고 한다. 자해, 난동 등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박 부장은 "환자들끼리의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병실을 부수는 환자를 제지하다가 물리적인 위협을 받기도 한다"며 "망상 증상이 있는 환자들은 '저 사람이 날 노려봤다' '무시한다'며 직원들을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탈출도 종종 일어나 병원 내부의 보안은 삼엄했다. 행정동에서 병동으로 이어지는 출구는 단 하나뿐이고, 각 방은 출입문마다 보안 카드를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박 부장은 "강력범들이 조현병을 앓았다는 말에 조현병을 무섭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의학적으로도 병이 명확하게 정립된 게 조현병"이라고 했다. 조현병은 한 달 정도 약물 치료를 진행하면 증상이 완화된다고 한다. 박 부장은 조현병을 당뇨와 고혈압에 비유했다. 그는 "당뇨와 고혈압은 만성 질환이지만 신경 쓰면 관리할 수 있듯이 조현병도 마찬가지"라며 "정신 병력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치료를 끊는 것이 위험하다"고 했다.

    법무병원을 두고 "국가 세금을 들여서 범죄자들을 치료한다"는 비판도 많다. 하지만 박 부장은 "정신 질환을 치료해서 범죄 재발을 막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조현병 학회 등에서는 정신 질환자의 강력 범죄 위험성은 치료 이후 94% 감소한다고 보고 있다.

    환자들의 치료가 종료되고 퇴원할 때마다 박 부장이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제발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약을 꼭 먹고. 우리가 다시 만난다는 건 나는 치료를 잘못한 거고, 당신은 범죄를 또 저지른 것이잖아요? 다시는 이 안에서 만나지 맙시다."

    ☞국립법무병원

    범법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는 법무부 소속 국내 유일 재소자 정신병원. 재범 위험이 있는 범법 정신 질환자와 마약·알코올중독 재소자가 수용된다. 1987년 '치료감호소'로 문을 열었고 작년에 국립법무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기고자 : 공주=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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