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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139) 보험과 도덕적 해이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발행일 : 2023.09.06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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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속성 중 하나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점이다. 불이 날까 봐 걱정되어서 화재보험에 기껏 가입해 놓고 불조심을 덜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변덕을 도덕적 해이라고 부른다.

    도덕적 해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골칫거리였다. 함무라비 법전은 "홍수와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는 것도 신의 뜻이니 그럴 때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빚진 사람들이 농사일을 눈에 띄게 게을리했다. 기독교 세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금전 거래를 아예 금지했기 때문이다. 1234년 교황 그레고리 9세는 보험 계약도 금지했다. 보험은 신의 뜻을 두고 도박하는 몹쓸 짓이라는 이유였다.

    17세기에 이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파스칼과 페르마 등 프랑스 수학자들이 재난과 사고를 확률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덴마크 신학자 레오나르두스 레시우스는 "인간의 의지는 운명도 바꾼다"는 신학 이론을 발표했다. 상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때 확률 이론과 자유의지론까지 뒷받침되면서 보험회사가 등장했다. 하지만 보험에 가입한 뒤 조심성이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그때 '도덕적 해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도덕은 집단 또는 관습을 의미하는 라틴어(mos)에서 나왔다. 해이는 주사위 놀이를 뜻하는 프랑스어(hasard)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도덕적 해이란, 집단 구성원들의 변덕스러운 경향을 말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그렇다. 일관성이 없지만, 그것이 비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도덕적 해이는 개인만 탓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도로 풀어야 한다. 화재보험에 가입한 뒤에 불조심을 게을리하면, 가입자가 책임지도록 약관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금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보호해서 예금주 스스로 조심토록 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자 미국 정부가 예금 전액을 보호했다. 당장의 금융 안정과 미래의 도덕적 해이를 맞바꾼 결정이었다.
    기고자 :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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