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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키 약점 극복하기 위해 악착같이 달라붙었죠"

    이영빈 기자

    발행일 : 2023.09.06 / 스포츠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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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자농구 '전설' 박신자

    국제농구연맹(FIBA)이 2007년 만든 명예의 전당에는 "국제 농구 역사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뽑힌다. 마이클 조던, 빌 러셀 등 세계적인 농구 선수들이 올라 있다. 그 85명 중 한국인은 단 1명. 한국 여자 농구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박신자(82)다. 2021년 헌액됐다.

    얼마 전 자기 이름을 딴 '2023 박신자컵'을 보기 위해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주최하는 박신자컵은 2015년 한국 6개 팀이 참여하는 대회로 시작했는데, 올해 일본, 대만 등 10개 프로 팀이 나서는 규모로 변모했다. 박신자와의 인터뷰는 주로 서면으로 이뤄졌다. 거동은 느렸지만 목소리와 눈빛은 또렷했다. 은퇴한 뒤 지도자, 행정가로 지내다가 2013년 주한 미군에서 일하던 남편이 퇴직하면서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박신자는 한국 여자 농구계 전설로 1967년 체코에서 열린 FIBA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끈 주역이다. 당시 한국팀 평균 키는 168㎝. 서양 팀들은 대부분 180㎝대였는데, 176㎝ 박신자가 센터로 골밑을 휘저으며 동독, 일본, 유고슬라비아, 체코를 차례로 무너트렸다. 소련에는 아쉽게 무릎을 꿇었지만 박신자는 대회 MVP(최우수선수)를 받았다.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선수단 환영 집회에는 수만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박신자는 "때때로 한국이 그립긴 했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오곡밥과 갖은 나물 밥상, 동짓날이면 팥죽과 동치미가 그리워졌다"면서 "서울이 도시가 너무 좋아져서 새삼 깜짝 놀랐다. 요즘엔 외국 사람들이 되레 서울에 관광을 온다던데, 왜 그런지 알겠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칭찬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저는 학창 시절 잘한다는 칭찬을 못 받았었어요. 그러다 1959년 고3 때 저희 고등학교(숙명여고)와 실업팀 한국은행이 종합선수권 결승에서 붙었었죠. 경기 막판에 다 넣으면 이길 수 있는 자유투 2개를 얻었어요. 그때 장충체육관은 노천이었어요.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슛을 던졌어요. 자신이 없었는데, 운 좋게도 2개 다 들어가고 이겼답니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용무 코치 선생님께서 '자식, 그거 어려운 거. 잘 넣었다!'라고 하셨어요. 그 뒤로 또 칭찬받기 위해 열심히 뛰었어요.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었던 것 같아요."

    그는 장대 같은 서양 선수들을 공수에서 압도한 비결을 "내 옆에는 김추자, 김명자같이 빠르고 좋은 기술을 갖춘 선수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 이 셋은 대만 등에서 '삼보(三寶)'라 불릴 만큼 환상 호흡을 자랑했다. "혼자 맞붙는다면 당연히 키 큰 선수가 이길 테지만, 2명 또는 3명이 콤비 플레이를 한다면 다르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게 신체만 뛰어난 팀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한국 여자 농구는 침체기다. 박신자 이후에도 1984 LA 올림픽 은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 4위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2012년 이후 올림픽 출전은 지난 도쿄 대회가 유일하다. 내년 파리 올림픽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다. 박신자는 "선수 개개인만의 힘으로는 국제 무대에서 어렵다"고 했다.

    "숙명여고에서 뛸 때, 저희더러 잘 뛰어 달라면서 전교생이 사과 한 알, 달걀 한 알, 쌀 한 홉씩을 합숙 훈련에 먹으라면서 보내줬습니다. 전쟁 직후라 전부 사정이 어려웠을 텐데요. 그런 마음 담긴 지원이 있으니 어떻게 허투루 뛸 수 있겠습니까. 선수 생활 내내 늘 그 마음을 생각했어요. 그때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핑 도네요. 준우승했던 세계선수권 때는 윤덕주 (농구협회) 부회장님이 나서서 현지에서는 찾기 힘든 한국 음식을 구해주시는 등 너무나도 고마운 지원들을 해주셨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큰 관심도 힘이 됐죠. 이렇듯 국가대표팀은 한두명 스타 선수만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이어 "난 고지식하게 연습 벌레처럼 연습에 몰두했다. 충분한 지원이 주어지고, 선수들이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틀림없이 다시 (한국 여자 농구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표] 대한민국 '농구 대모' 박신자(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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