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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부대 기획 참모 지냈던 원자력학계 원로 이창건 前 회장

"6·25 휴전협정을 일주일 앞두고 북쪽으로 대원 25명을 올려 보냈습니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했는데 덜컥 휴전이 되어버렸어요. 그러곤 연락이 끊겼죠. 우리에겐 군번도 없고, 신분도 서로 비밀이었기에 지금까지 생사를 모릅니다. 제발 어떻게든 살아남았기를, 붙잡혀서 끔찍하게 고문당하지 않았기만을 밤마다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원자력학계 원로인 이창건(94)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26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전 회장은 흔히 '켈로부대'라고 한 북파 첩보 부대 'KLO(Korea Liaison Office)' 기획 참모 출신이다.

이 전 회장은 전날 정부가 개최한 '6·25전쟁 제73주년 기념행사'에 다녀왔다. 켈로부대원이 이 행사에 초청받기는 역대 정부 중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정부는 올해 2월, 건국 이래 정부 처음으로 켈로부대원에게 공로금을 지급했고, 지난 14일엔 용산 대통령실 오찬에도 초청했다.

이 전 회장은 "우리 대원들이 수고도 많이 했고 큰 희생도 했는데 많은 대원이 단 한 번도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며 "남은 내가 이제 참전 용사로 인정받았지만, 먼저 간 대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켈로부대는 6·25전쟁 당시 미군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 산하 특수부대로 창설됐다. 주로 북한군이나 중공군으로 위장해 첩보 수집 같은 임무를 수행했고,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어민으로 가장해 북한군이 도처에 설치한 기뢰를 찾아내는 등 전과(戰果)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켈로부대원들의 신원은 철저히 기밀이었다. 부대원들은 서로 이름조차 몰랐다. 이 전 회장도 부대에선 '성사문'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 전 회장은 "미군 산하 부대였기 때문에 대원들도 내가 '성'씨인지 '문'씨인지조차 알기 어려워했다"며 "그래서 살아남은 대원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켈로부대의 활동은 전쟁 당시 군사기밀로 취급됐을 뿐 아니라, 정전협정 이후에도 미군 당국이 2급 비밀로 분류했다. '군번 없는 군인'이었던 대원 일부는 부대가 해체된 뒤 '병역 기피자'로 오인받아 군 복무를 다시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켈로부대는 1984년 미국 육군부의 관련 기록이 일반 문서로 공개되면서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 이후 1993년 '참전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계기로 부대원 일부가 참전 용사로 인정받았다. 2021년에는 보상금 지원 관련 법률도 통과됐지만 미군 소속이었다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 절차가 미뤄져 왔다.

이런 고난 끝에, 25일 행사에서 이 전 회장은 현 정부가 정전 70주년을 계기로 전달한 '영웅의 제복'을 입고 다른 참전 용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이 전 회장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쪽지를 건네는 장면이 생중계 화면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당시 영상을 보면, 이 전 회장은 '제복 전수식'을 앞두고 펜을 꺼내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10여 분간 글을 적던 이 전 회장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앉았던 정부 측 인사 한 장관에게 그 쪽지를 건넨 뒤, 사회자의 호출을 받고 무대로 향했다.

한 장관이 공개한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는 KLO 출신 이창건입니다. KLO가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며 지난 2월엔 보상금을 받고, 6월 14일엔 청와대 오찬에도 초청받았습니다.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 전 회장은 "대원들을 대표해 그 자리에 갔지만 이 자리에 올 수 없는 대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타까워 쪽지를 썼다"며 "쪽지 공간이 부족해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그 쪽지를 '법무부 장관'에게 건넨 이유에 대해 "제 두 딸이 한 장관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딸들과 한 장관이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옆자리에 앉아 반가워서 그랬다"고 했다. 이어 "한 장관이 내 쪽지를 어디에 끼워두고 자주 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행사장에서 한 장관은 쪽지를 접거나 주머니에 넣지 않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받은 상태 그대로 태극기와 함께 들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기고자 : 김자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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