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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라이스부터 싱가포르 슬링까지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싱가포르를 맛으로 느끼고 싶다면, 오차드 로드 중심에 자리한 '힐튼 싱가포르 오차드'에서 하룻밤 어떨까. 1971년 지어진 호텔을 리노베이션, 작년 2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힐튼호텔 중 가장 큰 규모(1080실)로 새로 문 연 곳이다.

현지인들도 찾는 호텔 안 5개 레스토랑에선 각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미쉐린 별 두 개를 받은 중식당 '시센 한텐', 뷔페 '에스테이트', 캘리포니아-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오스테리아 모차', 싱가포르 현지 음식을 내는 '채터박스', 그리고 애프터눈 티와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진저릴리'다.

가장 추천하는 식당은 채터박스.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메뉴는 치킨 라이스다. 닭 육수로 익힌 밥에 부드럽게 찐 닭안심을 같이 낸다. 삼계탕에 들어간 찹쌀밥이나 백숙을 먹고 마무리로 끓여 먹는 닭죽을 좋아한다면 누구라도 그릇을 깨끗이 비울 담백한 맛.

로작(Rojak)은 그보다 이국적이고 새로운 맛이다. 그린 망고와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과 채소, 튀긴 빵 위에 매콤달콤한 소스와 으깬 땅콩을 뿌려낸 샐러드. 로작은 말레이어로 '다양하게 잘 섞인'이란 뜻. 저마다 강한 풍미를 가진 이질적인 재료들이 어우러지는 맛으로,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인 싱가포르의 정체성을 한 그릇에 담아낸다. 이 음식에 담긴 의미가 아니더라도, 상큼하면서 고소한 감칠맛이 오묘하게 섞인 맛에 자꾸 손이 갔다. 싱가포르에선 김치처럼 먹는다고 하니 다른 메뉴를 시키면서 추가해도 좋다.

진저릴리에서는 영국의 극작가 서머싯 몸이 "동양의 신비"라고 극찬한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을 맛볼 수 있다. 진을 베이스로 파인애플 주스와 체리 브랜디 등을 섞어, 노을을 풀어놓은 듯한 오묘한 색을 낸다. 싱가포르 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국민 칵테일'로 "싱가포르에 믹솔로지스트가 500명 있다면 슬링 레시피가 500개 있을 것"이라고 한다.

힐튼이 50년 된 건물을 재단장하면서 가장 초점을 둔 것은 지속 가능성. 1년에 쓰는 플라스틱 카드키 4만개를 배스우드로 만든 나무키로 바꿨고 객실에 제공되는 생수는 플라스틱병에서 유리병으로 바꿨다. 객실 내 에어컨과 조명은 움직임 센서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모차는 자체 정원에서 로즈메리와 바질 등 허브를 직접 재배해서 쓴다. 세드릭 누불 총지배인은 "싱가포르 최초로 일회용 어메니티 대신 대용량 샴푸·보디워시를 배치하고, 호텔 자체 정수 시스템을 갖춰 매일 유리병에 깨끗한 물을 담아내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여행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했다. 기고자 :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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