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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잠'은 천대받고 있다. 잠을 잘 자는 것보다는 잠을 줄여서 공부하는 것을 칭찬한다. 필자가 본 가장 끔찍한 표어 중 하나는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는 어느 사설 학원 버스에 적힌 말이었다. 죽도록 공부하란 얘기는 잠을 희생하라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을 정리해보자. 그리고 내 아이의 수면 시간과 비교해보자.

신생아 시절인 만 1세까지는 14~15시간, 활동성이 늘어나는 만 3세까지는 12~14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는 만 6세까지는 평균 11~13시간 수면을 취해야 한다. 초등학생은 최소 10시간, 평균 11시간의 수면 시간이 필요하다. 청소년도 9~10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 기질적으로 적게 자거나 많이 자는 예외가 소수 존재하나 이 정도가 적정 수면 시간이다.

아이들이 수면 부족으로 겪는 문제는 어른보다 심각하다. 성장 방해, 면역력 저하로 인한 감염 위험, 사고 위험 증가, 짜증 등 정서적 변화, 주의력과 기억력 저하 등이 어른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학습 능력만 봐도, 사교육에 비용을 써가며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잠을 잘 재우는 것이 오히려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을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수면 부족이 장기적으로 뇌 발달의 결함으로 이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소아·청소년기에 충분히 잠을 자 두지 않으면 뇌 회로가 손상된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확인된 결과다. 잠을 자는 동안 뇌는 깨어 있을 때의 활동에 대비해 불필요한 기억은 없애고 필요한 회로를 준비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수면이 부족하면 휴식이 부족해 깨어났을 때 뇌 활동이 더뎌질 수 있다. 성장기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뇌신경 회로 체계가 손상될 수 있다는 게 공통적인 결론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수면 습관을 만들어 주는 일은 중요하지만, 실천하기 힘들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과 TV, 게임 등 유혹이 너무 많다. 아이가 수면을 잘 취하려면 온 가족이 합심해야 한다. '잠은 죽으면 실컷 많이 자는데 뭔 걱정'이라는 식의 수면을 폄하하는 태도로는 아이들의 잠을 소홀히 하기 쉽다. 수면이 우리 아이들의 뇌를 지켜준다는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의 적정 수면을 지켜주자. 기고자 : 김붕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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