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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한국 체조 간판 신재환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내 숨이 답답해지고 어디론가 솟구쳤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눈앞이 캄캄해져 뭐든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이렇게 있기를 30분. 시야가 트이니 혼자 쓰러져 있었다. 이런 극한 공포가 하루에 2~3번 찾아왔다. 나중에야 '공황장애'라는 정신 질환인 걸 알았다. 코치들도 몰랐다. "좀 쉬면 좋아지겠지…." 안일했다.

2021년 8월 도쿄올림픽 도마(跳馬·vault)에서 한국 체조 역사상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신재환(25). 징후는 전부터 있었다. 그는 당시 국제체조연맹(FIG) 도마 세계 1위였다. 기대감과 압박감 때문일까. 올림픽 한 달여 전부터 하루 1~2시간밖에 잠들지 못했다. 불안했다. 고2 때 허리디스크를 치료하느라 등에 꽂은 철심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메달을 혹시 못 따면 어쩌나…. 경기 중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과 발작이 반복됐다. '올림픽만 끝내면 된다'는 의지로 하루하루 버텼다. 기어코 금메달을 따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그는 유일하게 공중 세 바퀴 반을 돌았다.

'이제 괜찮아지겠지' 안도했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증상은 악화했다. 올림픽 직후 10월 세계선수권에는 연습 중 쓰러져 기권했다. 미루던 진료 상담을 가서 그제야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으면 낫는 병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제대로 된 치료 없이 연습에 몰두했다. 두 달 후 1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지만 공황장애 증상으로 또 포기했다. 그리고 이틀 뒤 만취 상태에서 행선지를 묻는 택시 기사를 때렸다. "택시를 탔는데 발작이 일어났고,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언론에 사건이 도배되면서 그는 고개를 숙였다. 3일 뒤 택시 기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택시 기사는 '자식뻘인 젊은 사람이 왜 그랬느냐. 정신 차리고 살아라'면서 처벌 불원서를 써줬다. 사건은 벌금형으로 종결됐다. 체조협회는 두 달 자격정지를 내렸다.

그 뒤 신재환은 외부 활동을 끊었다. "(공황장애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이유다. 2022년 4월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9월 세계선수권대회 대표 선발전에도 나서지 않았다. 사람들이 덜 관심을 갖는 7월 KBS배 전국기계체조대회에서 도마 3위에 오른 게 2022년 공식 대회 전부다.

10월 의사와 상담하다가 '혼자 모든 걸 짊어지겠다고 버티면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때부터 서툴게나마 주변에 "발작 증세를 보이면 그냥 꼭 안아서 안심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 적극 알렸다.

그리고 그해 전국체전에 나섰다. 도마에서 은메달을 땄다. 그런데 방송사 합동 인터뷰 직전 또 쓰러졌다. 1시간 쉬고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어떻게든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간 게 전국체전이었다. 올림픽보다 더 힘든 도전이었는데, 잘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신재환은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선다. 선발전은 지난해 끝났지만 코로나 여파로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되면서 지난 4월 선발전이 다시 열렸고, 출전권을 얻어냈다. "과거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태극마크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열심히 연습해 항저우에 꼭 가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기고자 : 진천=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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