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개막 100일 앞두고 파행 위기

오는 26일로 개막을 100일 앞두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정실 인사에 따른 사유화 논란이 불거지며 파행 위기에 놓였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편향되게 다룬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주도한 이용관(68) BIFF 이사장의 독단이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영화제 내부에서 "영화 수급과 영화인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어 정상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말이 나오고, 영화인들이 잇따라 반발하고 나섰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는 22일 입장문을 내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수 있을지 두려움이 생겼다"며 "그 책임이 이용관 이사장에게 있다는 영화계 대다수의 지적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어 "이 이사장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기 바란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앞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부산영화문화네트워크, 부산독립영화협회 등도 잇따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영화 단체들의 입장문은 이 이사장이 지난달 9일 BIFF 직제에 없던 운영위원장직을 신설하고 측근인 조종국(58)씨를 임명하며 촉발됐다. 이전까지는 허문영(61) 집행위원장 단일 체제였으나 개최 5개월을 앞두고 공동위원장 체제가 된 것이다. 또 조 위원장이 법인 운영·예산권을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 났다. 허 위원장은 이에 반발해 이틀 후인 지난달 11일 사표를 냈다.

영화제 안팎에서는 "이 이사장이 아시아 최대 영화제를 사유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부산영화학과교수협의회는 "이번 인사는 다이빙벨 사태 이후 BIFF 정상화를 위해 힘쓴 영화인들의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준동 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난 19일 소셜미디어에 "이건 다이빙벨 사태를 일으킨 서병수 전 부산시장도 안 한 짓"이라고 했다. 오동진 영화 평론가는 "이 이사장 사퇴와 이사회 해체 후 새 조직을 하루빨리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계에서는 다이빙벨 사태 이후 이른바 '이용관 사단'이 조직을 장악하면서 불거진 문제라고 지적한다. 당시 외부 간섭을 막겠다며 부산시장이 맡았던 조직위원장직을 없애고 이사장 권한을 강화했다. 이후 일부에서 "BIFF는 가족 기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정 대학 출신 등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용관 사단'으로는 오석근(62) BIFF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위원장과 조 위원장이 꼽힌다. 이들은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잇따라 영화 단체 수장에 올랐다. 이 이사장은 지난 2018년 1월 업무상 횡령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불과 7일 뒤 BIFF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오 위원장도 같은 시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그는 이 이사장과 함께 다이빙벨의 왜곡된 주장을 되풀이하는 영화 '다이빙벨 그 후'에도 출연했다. 부산 지역 신문은 녹취록을 확보했다면서 오 위원장이 조 위원장 임명 전 허 위원장에게 "당신은 회계 감사에서 신경 끄라"며 "우리 대장 이용관을 중심으로 해서 일을 하는데 무슨 사유화가 있느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조 위원장은 오 위원장이 영진위와 부산영상위 수장일 때 각각 사무국장과 사무처장을 맡았다.

BIFF의 올해 예산은 152억3000만원으로, 이 중 약 100억원이 국비와 시비로 지원된다. 박철중 부산시의회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영화계 독립성은 존중하지만, 시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산시에 예산 규모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과 조 위원장 등은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22일 통화에서 "조 위원장 임명은 수개월 전부터 내부 논의를 통해 결정한 것"이라며 "적법하게 임명된 사람을 강제로 물러나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구체적인 이유 없는 사퇴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15일 이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 후 사퇴하겠다"고 했으나 명확한 시기를 밝하지 않고 지금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입장을 묻는 본지 전화에 "통화하기 어렵다"며 답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에는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해외 언론에서도 BIFF의 국제적 위상 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화계 유력 매체인 '할리우드 리포터' '버라이어티' 등은 최근 관련 기사를 내고 "BIFF가 정실 인사로 리더십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BIFF 이사회는 오는 26일 임시 총회를 열고 조 위원장 해촉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기고자 : 신정선 기자
본문자수 : 218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