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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납북 피해자다. 1950년 9월 5일 경기도 강화군 국화리에서 32세 나이로 북한군에 납치됐다. 정부가 펴낸 '국립 6·25전쟁 납북자기념관 기증자료집' 240쪽부터 243쪽까지 외할아버지 함태선이 교복 입은 흑백사진과 그가 사용한 은제 담뱃갑, 안경집, 면도기 같은 유품 사진이 실려있다.

젊은 외할머니는 어린 두 딸과 남겨졌다. 가장이란 울타리를 잃은 삶은 척박하고 신산했다. 70대가 된 어머니는 두 살 때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외할아버지의 생신이 오면 임진각에서 북녘을 향해 제를 올린다.

6·25 때 남한에서 3800여 명이 납북됐고, 외할아버지를 포함한 500여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모든 납북자와 그 가족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이 같은 북한의 폭력으로 인해 평생 겪은 것과 같은 비통한 사연들을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한국의 납북자들은 조명받지 못했다. 처음엔 전쟁 통이면 누구든 죽거나 다치거나 생이별하기 마련이며, 국가와 집단의 폭력에 개인이 희생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시대적 체념' 같은 것이 있었다. 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우리 내부의 민주화가 더 큰 당면 과제가 되자, 북한이 저지른 온갖 나쁜 짓보다 남한 권력자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게 정의였던 시절도 오래 이어졌다.

이제 세계는 한국을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 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으로 평가한다. 기득권층 갑질부터 특권의 대물림, 빈부 격차, 학교 폭력, 조직 내 언어폭력, 성차별, 역차별, 이웃의 무신경함, 심지어 상상 속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권익과 복지를 침해하는 모든 것에 분노한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왜 민주주의를 독점한 것처럼 목청 높이는 국회의 최대 다수당은 우리를 위협하는 최대 폭력 집단인 북한에 대해선 유독 침묵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2019년 탈북 어민을 강제 북송하면서 "흉악범"이라 괜찮다는 북한의 논리를 되풀이했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논리다. 2020년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소각된 공무원 사건을 은폐하려다 '월북 몰이'를 하며 유족까지 욕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천안함 격침이 북한 소행이라고는 언급조차 꺼리면서, 우리 함장에겐 "부하들을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라고 막말했다. 학폭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가해자 편에 선 교사가 피멍 든 피해 학생에게 "이쯤 되면 너도 문제가 있는 거야"라고 호통치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한국의 인권 단체와 민주당은 북한만 얽히면 이렇게 제3세계 독재국 수준으로 추락한다. 북한의 조직적 폭력이 할아버지 대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건 이런 동조자들의 비호 탓도 클 것이다. 이런 이들이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인권과 민주를 들먹인들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기고자 : 정시행 뉴욕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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