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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세에 친정팀 복귀 배구 정대영

성인 배구 코트에 서면서 네 차례 은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코트에 서면 즐겁고 행복하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당장 유니폼을 벗으면 어딘가 한 부분이 아쉬울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25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22-23시즌을 치르면서 네 번째 은퇴를 떠올렸지만, 그는 당시 소속팀인 한국도로공사가 정상에 서는 데 힘을 보탠 뒤 계약 기간 1년 총액 3억원(연봉 2억5000만원·옵션 5000만원)에 GS칼텍스와 계약, 9년 만에 복귀했다. 최근 청평 GS칼텍스체육관에서 만난 마흔두 살 베테랑 정대영(GS칼텍스)은 "지금이 내 배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이라고 했다.

―왜 지금인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영광을 많이 맛봤을 텐데.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때가 제일 화려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빨리 잊히더라. 마흔 넘어 기량이 옛날보다는 못하지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금이 더 화려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난 시즌 끝나고 은퇴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는데.

"나는 프로다. 내가 뛸 수 있다고 구단에서 인정해주니까 뛰는 거다. 포지션(센터·미들블로커)이 같은 동료나 젊은 후배에 비해 아직 내 실력이 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기 때문에라도 더 뛰고 싶다. 배구는 무릎에 충격이 많이 가는 운동이라 선수 수명이 다른 종목에 비해 짧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더 할 수 있어도 일찍 그만두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내가 조금 더 오래 뛴다면 다른 선수들도 나를 롤모델로 삼지 않을까.

―만약 몸이 안 따라준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올 시즌 도중에도 미련 없이 옷 벗을 것이다. 30대 후반에 바닥을 한 번 친 적이 있었다. 2019-20시즌이었을 거다. 대표팀 차출 등으로 운동을 좀 소홀히 했더니 곧바로 배구 감각이 뚝 떨어졌다. 만약 배구를 계속하면 절대로 그런 시즌을 치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흔이 넘어서고 한 번 한계를 넘어서니 마라톤처럼 페이스가 팍 내려가지 않고 쭉 이어지더라. 앞으로 3년은 좀 무리인 것 같고 올해와 내년까지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딸 보민이도 배구 선수의 길을 걷는다던데.

"내가 적극 추천했다. 밖에서 다른 일 하는 것보다 배구를 하면 내가 잘 보살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제천중 1학년이다. 좀 늦게 시작했는데 그거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 다섯 살 때부터 경기장 다니면서 보고 배운 게 있는지 센스가 좋은 것 같다."

―배구 선수로선 '육아휴직' 후 복귀한 첫 사례 아닌가.

"보민이 생겼을 때 솔직히 복귀한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그런데 임신 5~6개월 지나고 코트가 그리워졌다. 출산 후 구단(GS칼텍스)에서 곧바로 연락해서 언제쯤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고, 그런 얘기가 오가면서 복귀가 기정사실이 됐다. 보민이가 아니었으면 일찍 그만뒀을 것 같다. 보민이가 친구들에게 '엄마가 배구 선수인데, 잘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더라. 딸 거짓말쟁이 안 만들려고 더 이를 악물고 한다. 하다가 너무 힘들 때 보민이를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그래도 어머니가 보민이 안 보살펴줬으면 일찍 은퇴했을 것 같다. 공무원인 남편은 항상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집이 제천인데 훈련 끝나고 쉴 때면 일부러 휴가 내서 청평까지 차로 데리러 오고, 바래다 준다. 도로공사(김천) 때도 그랬다. 남들이 남편이 개인 비서 같다고 한다."

―딸 보민이를 비롯해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력하고 준비하면 기회는 언젠가 찾아온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프로에 와서 3~5년간은 준비 기간으로 삼아야 하는데 재능 있는 친구들이 그걸 못 참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나도 현대 시절 경기에 못 뛰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코치들이 '한번 열심히 참아라. 그러면 좋은 날이 있을 거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말 2년 지나 기회가 주어졌다."

―언젠가 은퇴할 텐데, 장래 꿈은?

"당연히 지도자다. 그런데 프로보다는 유소년들을 가르치고 싶다. 지금 어린 선수들 보면 공격적인 면은 완벽한데 수비와 기본기가 많이 떨어진다. 최근 배구가 국제 무대에서 고전하는 게 기본기가 부족한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선수들이 초반 프로 적응에 힘겨워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도 프로에서 기본기 훈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시즌을 맞이하는 각오는?

"훈련은 시작됐다. 조금 있으면 전지훈련 가고 컵대회도 치른다. 새로운 팀으로 옮겼으니 꼭 우승을 하고 싶다. 재능 있는 선수들과 잘 어울려 팀의 중심이 되고 싶다. 올해는 잔소리 좀 할 것 같다. 성적을 내기 위해 싫은 소리 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래픽] 마흔두 살 정대영의 매구 여정 기고자 :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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