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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가 내 글의 연료… 타인을 이해하게 됐다

소설가 김초엽(30)에게 해외는 '고립'의 공간만은 아니다. 후천적 청각 장애가 있어 사용하는 음성 변환 앱이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 포착한다고 한다. 올해에도 태국과 스페인 등에서 책을 쓰고 독자와 만나기 위해 반년 가까이 머물렀다. 최근 만난 그는 "일정을 잡지 않고 저를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글 쓰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오랜만에 나가니, 앱이 해외에서 더 유용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걸 즐긴다. 무언가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 환경에서 제 작품들이 나왔다."

김초엽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는 SF 작가다.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이 25만부,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2021)이 10만부 넘게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SF와 이른바 '순문학'의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과 달리, 그가 활동을 시작할 때 'SF 작가'란 이름을 내건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어린 김초엽에게 문학은 취미였다. 본업은 과학.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를 업으로 삼기 전 "딱 1년만 글을 써보자"고 결심했다. "재밌게 읽고 봤던 모든 것들이 쓰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줬다"고 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단편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2017)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운이 좋았다. 그런데 데뷔 후 글을 쓸 밑천이 바닥났다"고 했다. 주로 장르 소설을 읽었으나, 배경 지식이 부족해 상상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다. "책, 다큐 등을 통해 다양한 인풋을 넣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아이디어는 항상 고갈이다. 작품을 쓸 때마다 불안하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불안'을 동력으로 데뷔 후 6년 동안 소설집 3권, 중편 1권, 장편 1권 등을 냈다.

김초엽의 작품은 인간과 비인간적 영역이 만나는 지점을 그려낸다. '비인간' 쪽이 작가다. "어릴 때부터 인간에게 관심이 없어서 과학에 빠졌다. 인간 세계는 논쟁만 있을 뿐 해답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소설가가 된 이상 제 이야기(과학)만으로는 쓸 수 없더라. 과학도 결국 인간의 삶과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종말의 시대에서 자라는 식물 이야기 등 인간 중심적 사고를 뒤집는 작품들이 많다. 차기작은 곰팡이가 소재다.

작가는 "인간을 획일적 집단으로 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에겐 10대 후반부터 앓고 있는 청각 장애(3급)가 그렇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입 모양을 보지 않으면 말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저 사람은 장애가 있어서 이런 작가가 됐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타인이 말하게 두고 싶지 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사람을 '이런 부류'라고 넘겨짚는 독자에게 '한 번만 같이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그는 "난청이 저를 덜 재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도 했다. "뭘 해도 잘되니까 제가 굉장히 능력주의자였다. 그런데 청력이 불편해지면서 어떤 사람에겐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더 이해하려다 보니,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작가의 집 거실은 식물로 가득하다. '초엽'(草葉)이란 이름과 달리,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식물을 들이다 보니 꽉 찼어요. 다시 부모님 댁으로 돌려보내기도 하지만…. 물 줄 때는 제 갈등이나 인간사가 잊혀지더군요." 어쩌면 그는 오늘 남몰래 웃으며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초엽이 말하는 SF]

영감을 주는 비디오 게임

'매스이펙트' 시리즈는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이다. 행성과 행성을 오갈 뿐만 아니라 은하 단위를 뛰어넘어 이동하는데, 재미있는 건 이 수많은 행성들이 각각 구분되는 구체적인 설정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가상의 행성들은 실제 행성 과학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 '폴아웃' 시리즈는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즉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다. 잔뜩 오염된 건물과 던전을 탐험하고, 텅 빈 황무지를 뛰어다니며 인간 없는 세계가 이런 모습일까 짐작해보게 된다.

SF 입문자들에게 권하는 책

옥타비아 버틀러 '킨', 한나 렌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추천한다. 모두 개성 있는 SF 소설이다. '킨'은 순식간에 빠져드는 몰입도 높은 타임리프 소설로 과거의 처참한 세계와 현대적 가치관을 가진 주인공의 충돌을 보여준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오르게 하는 산뜻한 색채와 경쾌함이 두드러지는 소설집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과학적 디테일과 추론으로 꽉꽉 채워졌지만 과학을 모르는 독자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속도감 넘치는 장편이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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