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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회학 분야의 창시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은 과학의 핵심 정신으로 '선물 주기(gift-giving)'와 '공유주의'를 꼽았다. 과학자가 세상에 주는 선물은 독창적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다. 그리고 논문에는 특허 같은 지식재산권을 걸지 않고 자유롭게 공유한다.

공유를 가능케 하는 매체는 학술지(journal)다. 보통 사람도 들어봤을 만한 '네이처' '사이언스' '셀' 같은 학술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학술지다. 지금 과학, 기술, 의학 분야를 합쳐서 5만종이 넘는 학술지가 있지만, 주요 학술지를 독점하는 출판사는 엘스비어, 스프링어, 와일리블랙웰, 테일러앤드프랜시스 네 곳이다. 이들은 작은 출판사들을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워 과학 논문의 50% 이상을 출판하는 공룡이 됐다.

21세기 들어 연구비가 급증하고 출판하는 논문 수도 늘었다. 학술지 출판사는 연구자에게 고액 게재료를 받고, 도서관이나 일반 구독자에게 다시 고액 구독료를 받는 '이중 수입' 구조로 무려 40%에 이르는 수익률을 내고 있다. 특히 논문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대신에 게재료를 올려 받는 관행이 시작되면서, 논문 한 편당 게재료 수백만원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천만원에 달하는 게재료를 물리는 학술지도 있다. 이런 장사 덕분에 2020년에 출판사 엘스비어의 수익이 넷플릭스와 맞먹었다.

과학자들은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을 꼼꼼하게 심사하는데, 출판사는 심사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과학자의 공짜 노동을 이용해 심사하고, 과학자의 노동의 결실인 연구를 출판하면서 그들에게 거액 게재료를 물리고, 그들이 속한 대학에 다시 구독료를 물린다.

지난 4월에 엘스비어에서 출간하던 '뉴로이미지' 편집자 42명이 출판사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전원 사퇴하고,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MIT 출판사에서 새 학술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공룡 출판사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연구자와 정부가 이런 실험에 어떻게 동참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고자 :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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