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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대전(外交大戰)이란 말이 어울릴 법하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외교의 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중동의 강국 사우디, 이란과 엮여 외교 경쟁으로 발현되는 양상은 무척 흥미롭다. 후일 국제정치 교과서에 실릴 만한 일들이다.

2차 대전 이후 중동은 미국 영향력의 공간이었다. 분쟁은 미국이 중재했다. 불문율이었다.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1991년 마드리드 평화회담, 1993년과 1995년 오슬로 협정, 1994년 요르단 평화협정, 2020년 아브라함 협정 등 웬만한 정치 회담 당사자 사이에는 항상 미국 대통령이 서 있었다. 2015년 이란 핵합의도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외교뿐만 아니라 걸프전, 이라크전, 테러와의 전쟁 등 연이은 역내 전쟁에서도 미국의 힘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힘의 변화가 나타났다. 극적인 장면은 지난 3월 10일 베이징에서 발표된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선언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텃밭 중동에서 핵심 분쟁의 중재자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시점과 장소가 묘했다.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되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날이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의도한 그림이라는 평이 중론이다.

미국은 안이했다. 사우디가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우디 미래 군주를 길들이려던 바이든의 포석은 실패했다. 그뿐 아니다. 최근 유출된 미 정보 당국 기밀문서에는 사우디가 중국과 군사 안보 협력까지 강화하며 미국을 멀리하리라는 우려가 담겨 있다. 만일 빈살만이 대미 압박 카드로만 중국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미국 대체 파트너로서 중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큰 지각변동이다. 미국을 필두로 중동의 외교게임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먼저 미국은 당분간 중동을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사우디를 다시 품으려 한다. 골간은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 중재다.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 간 삼자 친미 협력체제 구축이 목표다. 최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번스 CIA 국장, 맥거크 백악관 중동정책 고문 등이 줄지어 사우디를 향했다. 지난 6일 블링컨 국무장관도 사우디를 방문, 사흘간 머물며 왕세자를 만났다. 인도태평양 전략도 중동 문제가 꼬이면 흔들린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을 압박해도 중동을 중국에 내어주면 무의미하다. 빈살만 왕세자가 심혈을 기울이는 네옴신도시가 홍해 연안 시나이반도 인근이라는 점도 미국의 신경을 건드린다. 후일 사우디와 중국의 군사협력, 특히 해상협력이 혹 실현될 경우 지중해-홍해-아덴만 항로의 안전 항행에 변수가 생긴다. 현지에서 블링컨 장관은 미국이 결코 중동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거듭 강조했다.

사우디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을까? 미국의 간곡한 요청에 이스라엘과의 수교도 검토하겠노라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사우디의 평화적 민간 핵개발 지원 요구설이다. 사실이라면 미국이 받기는 어렵다. 대신 첨단 안보 시스템 제공을 비롯, 다른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 이전의 사우디가 아니다. 빈살만은 미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최대 이익을 얻어내는 데 집요하다. 블링컨 방문 직후 중국과 대규모 경제협력 콘퍼런스를 열어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합의를 발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손잡는 사우디판 '안미경중(安美經中)'이랄까. 진영에 속하지 않으면서 누구와도 손을 잡는 의미의 '적극적 중립주의(positive neutralism)'다. 사우디는 미중 경쟁을 기회로 삼고 있다. 얻고 싶은 것을 다 얻으려 한다.

중국의 게임이 흥미롭다. 지난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아바스 수반을 중국으로 초청,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다소 갑작스러웠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팔레스타인이 1967년 전쟁 이전의 국경을 근거로 국가를 수립해야 하고 수도는 동예루살렘이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이 요구가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랍이 늘 주장해 온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 선언은 최근 중국이 중동의 중재자로 자리매김하며 체급이 달라진 상황에서 나온 터라 눈길이 간다. 미국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서 원론적인 '당사자 간 합의'를 지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은 선명하게 팔레스타인 편을 들었다. 아랍 대중에게 중국의 존재감을 발신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고약하다. 최근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아브라함 협정으로 묶어내려 동분서주하던 차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아랍 대중들의 팔레스타인 정서를 살펴야 하는 사우디 왕실 입장에서는 중국이 강조한 원칙론을 그대로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중국이 미국의 친미 진영 복원을 막는 수를 둔 것이다.

이란도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잠정적 핵합의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경제난과 시위 사태를 겪고 있는 이란은 다소 수동적인 태세로 위기관리에 집중해왔다. 제재 복원 이후 어쩔 수 없이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자율성은 약화되었다. 이 와중에 중국은 사우디 등 걸프 국가와 가깝게 지내면서 이란을 소외시키는 조짐도 내비쳤다. 그렇다면 이란은 중국의 파장으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중국이 친미 사우디를 끌어당겨 자국 게임에 활용했듯, 미국도 친중 이란을 최대한 끌어당겨 놓으려 하지 않을까?

전례 없이 치열한 중동 외교전이다. 고위급 인사들이 중동 각국을 분주하게 오간다. 상황은 불확실하고 예측은 어렵다. 그러나 특이한 추세 하나를 읽을 수 있다. 중동에서는 미중 경쟁이 충돌 대신 중재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교착되었던 정치 협상이 재개될 예정이다.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를 필두로, 이란 핵협상 재개, 아브라함 협정 확대 논의, 시리아, 예멘, 수단 등 내전 지역 평화 회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희한한 역설이다. 물론 잠정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이기에 중재 경쟁이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에든 잠시 찾아온 평화의 기회를 잡아채 지속시키는 것이 지도자들의 몫이다. 상상력과 지혜가 절실하다.

[그래픽] 치열해지는 중동 지역에서의 미·중 외교 경쟁 기고자 :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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