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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수 폴킴 행세를 한 적이 있다. 자칭 '연예인 닮은꼴'이 모여 와인을 마시는 소모임에서다. 간만의 휴일을 집에서 보낼 수 없어 소모임 앱을 켰다. 이종석, 서현진, 제니가 온다는 말이 호기심을 키웠다. 뜨거운 햇볕을 뚫고 강남의 한 모임 공간에 갔다. 규칙은 자신의 이름을 비밀로 한 채, 연예인 명찰을 달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 "누구시라고요?" "검색해보시면…" 대다수는 연예인의 사진과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웠다. 대화 역시 서로의 마음에 도달하지 못한 채 모임이 끝났다. 5만원 가까이 내고 먹은 와인이 맛이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역할 놀이가 어색했던 탓일까.

그날 '연예인' 스무 명이 모인 건 최근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모방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성대모사나 모창이 일회성 장기자랑이 아니라, 일종의 '부캐'(부캐릭터)와 결합되며 장기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이가 각자 정체성의 핵심인 '알맹이' 대신 '껍데기'를 원하는 것이다. '뚱종원의 뒷골목식당'('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방송 패러디부터, 배우 이경영을 따라 하던 세 개그맨이 함께 만든 유튜브 채널 '경영자들'까지. 이들과 실제 배우가 최근 만나, "진행시켜" 같은 유행어를 다 함께 선보인 영상은 조회수 350만회를 기록했다.

"이건 고소당해도 할 말 없다." '모방 콘텐츠'를 보다가 이런 댓글이 눈에 들어 왔다. '껍데기'의 본래 주인들이 불쾌할 수도 있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껍데기를 빌려 쓰는 일에 칼을 대는 문제는 복잡하다. 어디까지가 껍데기일까. 껍데기를 쓰고 연기하는 알맹이는 항상 껍데기인가.

허구에 기반을 둔 문학 역시 인간의 '껍데기'를 빌려 쓴 결과물이다. 작가의 알맹이가 아닌, 그의 껍데기가 상상하는 세계를 빈 도화지에 그리는 것이다. 사적인 대화를 동의 없이 작품에 그대로 실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경우 문제가 되지만, 모든 작품에서 작가의 알맹이를 골라내기란 어렵다. 작가를 인터뷰할 때 크게 고민되는 지점이다. "작품을 어떻게 썼냐" "실제 경험한 거냐"고 묻는 순간, 작가는 작품에서 끌려 나오고 문학은 자서전이 된다.

최근 한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 그는 "이야기는 언제나 픽션과 자기 경험이 섞여 있다. 오토픽션(자전적 소설)은 자기 고백을 해야 하고, 픽션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한데,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했다. 문학은 문학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 그의 말은 껍데기와 알맹이를 구분 짓기보다는, 껍데기를 즐기자는 말로 들렸다. 작가도 독자도 말이다. 마침 지난 14일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 역시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우리 안에는 여러 겹의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고 있기에, 그 여러 겹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축제를 즐기는 빠른 방법일 것이다.

그러니 얼마 전 와인 소모임에 간 것도 '이영관'이 아닌 '폴킴'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실 그날 하나의 껍데기를 더 얻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출연한 모 배우를 더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껍데기의 무용(無用)함을 한번쯤 사랑해보기를 권한다. 기고자 : 이영관 문화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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