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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윌리엄 쇼클리는 편집증을 앓는 독재자였다. 벨연구소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쇼클리는 대학을 돌며 졸업생을 직접 모집했다. 쇼클리 연구소도 순탄치 않았다. 참다못한 젊은 천재 8명이 한꺼번에 연구소를 그만두고 이직했다. '8인의 배신자'는 페어차일드에서 기술을 개발했고, 이 중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독립해 실리콘 반도체 회사를 만들었다. 창업자의 이름을 합친 '무어 노이스(Moore Noyse)'가 '더 많은 소음'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통합(Integrated)'과 '전자(Electronics)'를 결합해 사명을 만들었다. 반도체 제국 인텔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새로운 산업을 직접 만들겠다는 야망과 추진력을 가진 젊은 창업자들이 몰려들면서 오늘날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했다.

무어와 노이스는 1987년 CEO 자리를 앤디 그로브에게 물려줬다. 인텔 창업 이듬해에 합류한 직원이었다. 그로브는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열었다. 그로브가 CEO로 재직하는 동안 인텔 시가총액은 40억달러에서 1970억달러로 치솟았다. 인텔의 성공적인 승계는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후계 공식이 됐다. 회사가 안정됐다고 판단한 순간, 오래 키워온 2인자를 후계로 삼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 초기 멤버 스티브 발머에게 회사를 넘겼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지주사 알파벳 체제를 완성한 2019년 15년 차 순다르 피차이에게 구글을 맡겼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역시 자신의 비서 출신이자 클라우드 사업을 총괄하던 앤디 재시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2021년 회사를 떠났다. 게이츠는 51세, 베이조스는 57세, 브린과 페이지는 46세였다. 나이보다는 회사 비전, 강점과 약점을 자신만큼 잘 아는 '두뇌 대역(brain double)'이 만들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었다. 모두 그로브처럼 해낸 것은 아니다. 발머는 PC에서 모바일로 시대가 변하는 것도 깨닫지 못했고, 인공지능(AI) 비서 '알렉사'로 주목받던 아마존은 재시가 맡은 뒤 AI 시장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

엉뚱한 아이디어로 차고에서 시작한 빅테크 창업자들의 이야기는 현대판 위인전이다. 이들의 뒤를 잇는 건 거인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운명과 맞닥뜨리는 일이다. '독이 든 성배(聖杯)'라고 부르면 딱 맞는 자리이다.

마지막 남은 빅테크 창업자 두 사람이 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범접하기 어려운 뛰어난 머리와 창의성, 추진력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절대 듣지 않고 회사를 난폭 운전하는 인물들이다. 둘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2인자가 없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올인을 외치며 회사 이름을 바꾼 것도, 불과 2년 만에 메타버스를 버리고 AI를 키우기로 한 것도 저커버그 혼자 결정한 일이었다. 저커버그는 직원 수만 명을 해고하면서 자를 사람을 하나씩 직접 골랐다. 한 테슬라 임원은 "머스크는 태양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화상을 입을 확률이 높다는 비아냥이었다. 번스타인 리서치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CEO 직속 임원의 1년 내 이직률이 9%였는데, 테슬라는 44%였다. 40년 가까이 이어진 실리콘밸리의 공식을 통해 창업자들은 정점에서 박수받으며 떠나는 영광까지 거머쥐었다. 저커버그와 머스크는 아직은 이 공식을 따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창업과 성공만큼 중요한 것이 후계자 양성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반면교사가 되지는 않을까 궁금해진다. 기고자 : 박건형 테크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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