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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옛 워커힐 대극장서 개막… '빛의 시어터' 아트디렉터 이안누치

"관객들은 익숙했던 역할이 역전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극장에서 관객의 역할은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작품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선 관객이 작품으로 들어와 작품의 일부가 되니까요."

이달 초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앤리조트 내 '빛의 시어터'에서 만난 잔프랑코 이안누치(Iannuzzi)가 말했다. 그는 15일 이곳에서 개막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와 '가우디, 상상의 건축가'의 아트디렉터다.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예술 작품의 이미지를 프로젝터로 투영해 음악과 함께 공간 전체를 채우는 신개념 전시다.

이안누치는 프랑스의 버려진 채석장을 연간 6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한 '빛의 채석장'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작품을 선보여온 이 분야 선구자다. 달리·가우디전 개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는 "반듯한 흰색 벽이 아닌 공간 전체를 활용하는 만큼 그 공간의 특성을 포착하고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빛의 시어터'는 옛 워커힐 대극장(1963년 개관)이었던 이 장소가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이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천장의 대형 샹들리에와 옛 의상 같은 극장 시절의 흔적들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관객들은 분장실에도 들어가 보고 무대가 있던 자리도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작품을 느끼게 됩니다."

35분에 걸친 1부 주제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 부러질 듯 가는 다리의 코끼리가 하늘을 날고, 석류에서 튀어나온 물고기가 입에서 호랑이를 뱉어낸다. 이런 몽환적 장면이 총 면적 약 1000평, 층고 21m의 공간을 채우며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10분 길이 2부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무대. 대표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첨탑, 즐겨 사용했던 모자이크 타일의 현란한 색감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안누치는 "달리와 가우디 모두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이었고 달리는 가우디를 깊이 존경했다"면서 "두 거장이 보여준 한없는 상상의 세계에 관객들이 들어와 보길 바란다"고 했다.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예술 작품을 그대로 벽면에 투영하는 게 아니다. 이안누치는 작품에서 따온 모티프에 직접 촬영·수집한 이미지를 더해 기성 예술품을 자신의 작품으로 재해석한다. "원화(原畵)는 박물관이나 미술관까지 가야 만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미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죠. 반면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몰입형 아트는 관객의 공간각(空間覺)을 자극해 미술 애호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갑니다."

이안누치는 1970년대 이탈리아 베네치아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당시 언어보다 더 즉각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진에 주목했다고 한다. 특히 콜라주처럼 여러 사진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1980년대 후반 프랑스의 버려진 채석장에서 열린 사진전에 참가한 일이 몰입형 전시를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벽에 액자를 나란히 거는 방식이 뭔가 아쉽게 느껴졌어요. 액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거대한 돌벽 전체를 캔버스로 활용하면 어떨까 상상했지요." 이 장소를 전시장으로 재활용하자는 그의 건의가 받아들여졌다. 첫 전시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에서 제목을 따온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었다. '빛의 채석장'의 시작이었다.

현재 그는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에 기반한 새 기술을 시험 중이다. "지금처럼 관객이 저마다 개별적 체험을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관객들이 이런 기술을 활용해 작품 안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일도 가능해질 겁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작가들을 발굴해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세계에 소개하고 싶다"고도 했다. 기고자 :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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