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논란 커지는 신상 공개 제도

한국 국적의 30대 여성을 캄보디아에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인 부부가 지난 12일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캄보디아 경찰은 중국인 부부의 얼굴이 나온 상반신 사진, 전신 사진, 신분증 사진 등 5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해외 언론도 이 사진들을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언론은 해당 사진들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실신시킨 뒤 성폭행까지 시도했던 가해자는 지난 12일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지만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살인, 성폭력 등을 저질러도 일단 재판에 넘겨지면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신상 공개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현행 신상 공개 제도는 피해자는 떨게 하면서 가해자는 보호해 주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려면 신상 공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상 공개 대상·범위 넓혀야"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자 신상 공개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신상 공개를 허용하는 특별법에 의한 신상 공개만 가능하다.

현재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게 하는 법률은 성폭력범죄특례법, 특정강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 두 개뿐이다. 살인, 강도, 강간, 강제추행 등 범죄 혐의자의 얼굴, 이름,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법률의 신상 공개 대상과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범죄와 강력범죄 이외에는 신상 공개가 불가능하다. 피의자 단계를 넘어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1심과 2심에서 중형이 선고돼도 신상을 공개할 수 없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도 2심 재판부가 신상 정보 공개를 명령했지만, 유죄가 최종 확정되기 전에는 공개가 안 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신상 공개가 됐던 피의자가 재판에 넘어가면 신상 공개가 안 된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신상 공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대 출신인 김판수 변호사는 "특히 1심과 2심을 거치며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신상 공개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이날 "현행법상 기소 이후엔 신상 공개가 제한돼 있다"면서 "피해자 보호와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범죄자의 최근 사진 공개돼야"

우리나라에서는 신상 공개를 하더라도 오래전에 찍은 사진만 제공돼 범죄 혐의자의 최근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2019년 법무부 유권해석에 따라 경찰은 자체 촬영한 사진이 있어도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 현행범이거나 명백한 증거가 있더라도 경찰이 촬영한 '머그샷(mug shot·인상 착의 기록 사진)'을 내놓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에 붙어 있는 낡은 사진만 공개된다. 경찰 관계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머그샷을 공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 범위 확대할 필요"

언론의 신상 공개도 제한되고 있다. 대법원은 1998년 강력 사건 피의자가 실명(實名)을 보도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 등에 따라 실명 보도는 허용될 수 없고 공공성도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피의자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이에 앞서 언론이 실명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후 언론사들은 피의자의 실명을 알게 되더라도 수사기관이 공표하기 전까지는 보도하지 않게 됐다.

대법원이 2009년 '고도의 해악성을 가진 중대 범죄' '공적 인물의 직무 관련 사안' 등에 대해서는 실명 보도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여전히 익명(匿名) 보도를 원칙으로 보고 있다. 한 법조인은 "대법원이 실명 보도를 허용하는 기준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언론사가 마땅히 실명을 써야 할 범죄자라도 향후 소송을 우려해 익명을 쓰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 중대 범죄 피의자에 대한 실명 보도를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법원도 실명 보도의 공익성을 확대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 흉악범 신상 공개 제한하는 현행 시스템 기고자 : 김수경 기자
본문자수 : 220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