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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995년 고위층에 폭탄 소포… 수십명 사망·중상, 17년간 안 잡혀

'유나바머(Unabomber)'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의 천재 수학자 출신 우편물 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81세 나이로 사망했다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10일 (현지 시각) 밝혔다. FBI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교도소 의료센터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카진스키는 이날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연방교도소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환경 파괴를 야기하는 기술 문명과 산업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기업 등의 고위 인사 수십명에게 소포로 사제 폭탄을 보내 총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7년 이상 미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카진스키 사건은 단일 사건으로선 FBI가 역대 최고액의 수사 비용(5000만달러·약 650억원)을 지출한, 최악의 지명수배 사건으로 기록됐다.

1942년 미 시카고의 폴란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진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걸어다니는 브레인'으로 불린 천재였다. 초등학교 때 아이큐 167을 기록했고, 월반(越班)을 거듭해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미시간대 수학 박사 학위 논문은 미국의 수학자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쯤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차원적인 수학 이론을 담고 있다.

24세 때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최연소 수학 교수가 될 정도로 천재 수학자의 길을 걷던 그는 교수가 된 지 2년 만에 돌연 사직하고 세상과 단절했다. 동생이 운영하는 고무 공장에서 잠시 일하다가 몬태나주 깊은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수렵·채취 생활을 하며 과학·문학 분야 책들을 촛불에 비춰 읽었다고 한다. 가족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은둔의 테러범으로 변신한 계기를 두고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적국 스파이를 염두에 둔 정보기관의 심리 압박 실험에 참여하면서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부터 동생 공장에서 일하던 여인을 짝사랑하다 거부당한 후 돌변했다는 설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를 둘러싼 인터뷰 등에 "27세 때부터 살인을 저지르는 상상을 했다"거나 "폭탄 제조가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한 정황이 나와,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 성향이 있었다는 추측이 나온다. 1970년대 그가 은둔 생활을 하던 오두막이 인근 부동산 개발로 피해를 입자, 환경을 파괴하는 과학·기술 전반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1978년 일리노이대에 사제 폭탄이 담긴 소포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대학·항공사 등에 대한 우편물 테러에 나섰다. 1985년 캘리포니아의 한 컴퓨터 상점 주인이 숨지는 등 사망자가 3명 나왔지만, 수사 당국은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카진스키는 폭탄에 지문을 남기지 않았고, 일부 소포엔 엉뚱한 사람의 체모를 넣는 방식으로 수사 당국을 교란했다.

그가 붙잡힌 결정적 계기는 1995년 6월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신문에 3만5000단어 분량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보낸 것이다. 그는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며,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신문에 실어주면 범행을 멈추겠다고 약속했다. 신문사들은 수사 당국과 논의를 거쳐 카진스키 요구를 받아들였다.

카진스키는 하지만 이 선언문 때문에 꼬리를 잡혔다. 신문에 실린 선언문을 읽은 동생(데이비드 카진스키)이 "형의 문체를 연상시킨다"며 FBI에 제보했고, FBI는 1996년 4월 몬태나주 오두막을 급습해 카진스키를 검거했다. 동생은 현상금 100만달러 가운데 대부분을 테러 피해자 유족에게 나눠줬다. 1998년 1월 법원은 카진스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카진스키가 잡힌 후엔 그의 테러 행각을 모방한 범죄자들이 나타났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죽인 연쇄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카진스키를 거론하며 자신의 범행 동기를 설파한 '선언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카진스키를 자연 파괴, 불평등 심화 등 21세기 산업화 병폐를 내다본 선각자로 추앙하는 팬클럽도 있다. 그의 스토리를 담은 영화 '유나바머 : 테드K'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도 나왔다. 생존한 피해자와 사망자의 유족들, 수사 당국은 이 같은 카진스키 영웅화 움직임에 반발해왔다. 디스커버리에서 만들고 넷플릭스에도 공개된 '맨헌트'는 유나바머를 수사하는 FBI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다. 기고자 :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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