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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태영 일대기 다룬 음악극 '백인당…'
성평등 위해 싸운 업적 경쾌하게 풀어내

"난 못 참아, 아니 안 참아. 안 괜찮아!"

1920년 평안북도 묘향산 아래 산골마을 교회. 일곱 살 소녀 '태영'은 떼를 써서 훌쩍 큰 언니 오빠들이 경쟁하는 웅변대회에 나간다. "아들을 낳으면 그리 좋아하면서 딸을 낳으면 웁니다. 딸로 태어난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우레 같은 박수를 받은 딸에게 엄마는 말한다. "앞으로도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 말은 끝까지 다 하고 내려오라이." 이 소녀는 자라서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다.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에서 공연 중인 음악극 '백인당(百人堂) 태영'(박소영 연출·장우성 작)은 고(故) 이태영(1914~1998) 변호사의 일대기다. 이화여전을 나와 삯바느질 이불 장수로 독립운동가 남편을 옥바라지했고, 광복 뒤 세 아이의 엄마로 서울 법대에 입학해, 최초로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가 된 여성. 평생 여성도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꿈꾸며 가족법 개정과 호주제 폐지 운동을 이끌었다.

'궂은 땅 험한 길, 폭풍과 먹구름'에 맞섰던 세월을 되짚지만, 극은 시종 경쾌하다. 뮤지컬 '쇼맨' '레드북'의 노래를 만든 이선영 작곡가의 정갈하고 위트 있는 음악, 이태영(이봉련·백은혜)과 그 외 인물(이예지·이현진)을 맡은 두 배우의 찰떡 호흡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좌절의 순간마다 무대 위엔 팽팽하게 당겨진 선이 늘어나며 공간을 갈라 놓지만, "느리고 더디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마침내 그 선을 모두 끊어낸다. 잘 만든 소극장 공연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의 위력을 증명하는 작품. 공연은 18일까지. 기고자 :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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