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찹쌀·멥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해 기름에 튀긴 떡으로 '겉바 속쫀'

5일 오전 10시 30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20~30대로 보이는 10여 명이 디저트 가게 '연리희재'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지난 4월 갤러리아에 정식 입점한 이 가게는, 전국 맛집이 집결했단 이곳 식품관에서 가장 붐비는 집 중 하나다. 경기도 파주가 본점으로 '개성 주악'을 주 종목으로 판매한다.

"우메기(주악의 다른 이름) 빠진 잔치는 없다"고 할 정도로 개성의 대표적인 잔치 음식인 주악이, MZ세대가 주도하는 '할매니얼(할머니 입맛+밀레니얼)' 열풍을 타고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대대로 개성에 터를 두고 살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란 오면서 개성을 떠나게 된 '개성 토박이'이자 최근 '윤숙자의 개성음식 이야기'를 펴낸 윤숙자(75)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은 "주악은 '우메기'라고도 하는데, 가운데를 우묵하게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며 "불교를 숭상한 고려에선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헌다(獻茶)의 예가 정착하면서 차와 함께 먹는 과자(菓子)가 발달했고, 이러한 문화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약과, 주악 등으로 꽃피웠다. 고려의 디저트를 2023년 젊은 세대가 즐긴다니 반갑고 신기한 마음"이라고 했다.

개성 주악은 네모 모양으로 만드는 '모약과(개성 약과)'와 함께 개성의 대표적인 명절 및 의례 음식으로 꼽힌다. 약과가 '한과'라면 '주악'은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해 기름에 튀긴 떡이다. 여기에 꿀이나 조청 등을 바르는 즙청 과정을 거친다. 겉은 달콤하고 바삭하면서도 속은 쫀득하다. 꼭 요즘의 도넛 같다. 그렇지만 쌀가루, 막걸리, 꿀 등을 주재료로 하기에 속은 도넛보다 훨씬 편안하다. 다른 떡과 달리 쉽게 굳지 않아 여러 날 두고 먹기도 좋다.

현대의 주악은 개성의 전통 주악과 여러 면에서 조금씩 달라졌다. 첫째가 크기다. 윤 소장은 "오늘날 주악은 크기를 작게 줄여 아담하게 만들지만,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개성 주악은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커다랬다"고 했다. 또 초콜릿, 크림치즈, 과일 등 여러 토핑으로 변주해 좀 더 젊은 층의 입맛에 가까워졌다. 갤러리아 압구정·광교 등에 입점한 '연리희재'가 대표적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김씨부인'에선 좀 더 클래식한 주악을 맛볼 수 있다. 차와 함께 주악, 한과 등을 소반에 담은 한식 다과상이 나온다. 미쉐린 1스타를 받은 한식 발효·숙성 특화 레스토랑 '세븐스도어(서울 청담동)'에서도 후식으로 주악을 낸다.

재료가 간단하고 레시피가 복잡하지 않아 집에서 만들어 볼 수도 있다. ①찹쌀가루 3컵에 멥쌀가루 1컵, 소금 1작은 술을 체에 내린다. ②막걸리 2/3컵에 설탕 1큰술을 녹여 쌀가루에 넣고 잘 섞어 반죽한다. ③냄비에 설탕 1/2컵과 물 1/2컵을 넣고 끓이다가, 설탕이 녹으면 꿀 1큰술을 넣고 2분 정도 더 끓여 설탕 시럽을 만든다. ④반죽을 40g 정도씩 떼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가운데에 구멍을 낸다. ⑤팬에 식용유를 붓고 온도가 90~100℃가 되면 반죽을 넣는다. ⑥반죽이 기름 위로 떠오르면 온도를 130℃로 올려, 앞뒤로 뒤집는다. ⑦익은 반죽을 체에 건져 기름을 빼고 설탕시럽에 즙청한 후 고명을 올린다. 이렇게 하면 주악 12~15개가 나온다('윤숙자의 개성음식 이야기' 참조).

윤 소장은 "개성은 음식 앞에 도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장"이라며 "한국 전통 음식 대부분은 조선 시대 식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조선의 식문화란 결국 고려 시대 개성의 문화가 한양으로 이어진 것으로, 개성의 식문화 역시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했다. 기고자 : 남정미 기자
본문자수 : 181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