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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이종찬의 광복회가 '김원웅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김태훈 논설위원

    발행일 : 2023.05.31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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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은 1885년부터 1960년까지 벨기에 식민지였다. 식민지 중에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학대를 당했다. 상아와 고무 채취 강제 노동이 특히 악명 높았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이 잘리고 인질로 잡혀 있던 가족이 살해당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대 1000만명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만 희생당한 게 아니라 교육도 받지 못했다. 독립 당시 콩고 인구 1300만명 중 대졸자가 고작 16명이었다. 34세에 초대 총리가 된 루뭄바는 중학교 졸업 후 우편기술학교에 다녔다. 이 정도가 최고 학력이었다. 막상 나라는 독립했는데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울 능력이 없었다. 신생국 대부분이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의 정체성을 담는 헌법조차 스스로 제정할 능력이 없어서 자국 헌법을 외국 헌법학자들에게 부탁해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아니었다.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우리 손으로 헌법을 만들었다. 세계는 대한민국 70년사를 기적이라 한다. 우리 손으로 헌법을 만든 것도 그 기적에 포함된다. 그 첫 단추를 채운 주역은 광복을 위해 싸운 임시정부 요인들이었다. 임시정부는 상해 시절 헌법을 만들고 이후 5차례 개정한 경험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광복 후 제헌 과정에 국내에 있던 두뇌들을 참여시켰다. 도쿄제대와 경성제대 등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총독부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친일파였지만 당대 최고 엘리트이기도 했다. 임정 요인 신익희가 그들에게 훗날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되는 초안을 만들게 했다. 광복 후 숨죽이고 있던 총독부 출신 한인 엘리트들은 처음 신익희의 호출을 받고 "이제 죽나 보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건국에 힘 보태는 것으로 지난 과오를 씻으라"는 말에 감복했다. 이후 임정 산하에 행정연구회를 결성해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헌법학자 유진오도 참여했다.

    지난주 선출된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이 당선 후 회원들에게 큰절하며 "힘을 합치자"고 했다. 광복회장 선거는 서울 서대문의 국립임시정부기념관에서 치러졌다. 그곳 1층 야외 광장에 조형물 '역사의 파도'가 있다. 수많은 물결이 합쳐져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 신임 회장은 "그 물결 사이사이에 독립선언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헌 헌법 전문 등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독립과 건국의 결실인 제헌도 민족 역량을 결집해 이룬 성과다.

    광복회는 신익희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광복뿐 아니라 건국에 기여한 이들의 노력도 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김원웅 회장 시절 광복회는 그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승만이 세운 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낸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 묘도 현충원에서 파내자고 했다. 나라를 없애려 쳐들어온 자들과 싸운 이를 배제하고 어떻게 광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건가. 김원웅 전 회장의 잣대대로면 총독부 관리를 건국에 동참시킨 임정 요인들도 파묘 대상이다. 그는 "6·25는 민족 해방 전쟁이라는 북한 주장을 부인하지 못한다"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종북이면 서슴지 않고 종북을 택하겠다. 정의로운 종북이기 때문"이란 말도 했다. 광복만 하면, 이후에 들어설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어도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언사였다.

    이종찬 신임 회장은 통합을 강조했지만 이런 세력까지 포용해선 안 된다. 이 신임 회장이 "'대한민국은 태어나면 안 됐다'처럼 도를 넘는 말을 하는 이들만 아니라면"이라는 통합 단서를 단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가 내일 광복회장에 취임한다. 헌법을 만들 때 독립지사들이 보여준 통합 정신을 살리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과는 단호히 맞서는 광복회가 되기를 바란다.
    기고자 : 김태훈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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