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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텍사스주엔 '방탄' '꼼수' 없었다

    정지섭 국제부 차장

    발행일 : 2023.05.31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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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적으로 거짓 주장에 기반한 탄핵이다." 켄 팩스턴(60) 미국 텍사스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이 지난 27일 자신에 대한 탄핵안이 주 하원에서 가결된 뒤 낸 성명이다. 이날 텍사스주 하원은 직권남용과 부패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그에 대한 탄핵안을 찬성 121대 반대 23으로 가결했다.

    팩스턴 장관은 자신에 대한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외부 조사 결과를 제시했지만 소용없었다. 탄핵이 확정되려면 상원 투표까지 통과해야 하지만, 일단 하원에서 통과되면서 즉시 직무가 정지됐다.

    미국의 주 법무장관은 단순한 지방 관료가 아니다. 공직자인 동시에 당적을 가진 정치인이다. 관할 지역 사건 수사와 처벌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중앙 정치인 못지않게 주목받는다. 더구나 텍사스주는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캘리포니아와 쌍벽을 이룬다.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가 진보의 아성이라면, 공화당의 기반 텍사스는 보수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그의 탄핵에 앞장선 이들은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텍사스주 하원은 공화당(85석)이 민주당(64석)을 압도하는데, 공화당 의원의 71%(60표)가 탄핵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팩스턴은 주 하원의원으로 5선을 지낸 지역 정가의 거물이다. 공화당 차기 대권 레이스 1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깊다. 트럼프도 "팩스턴에 대한 탄핵 절차를 진행하면 함께 싸우겠다"며 공화당 주의원들을 압박했다. 그렇지만 직위를 남용해 후원자에게 이득을 준 혐의로 연방수사국의 수사를 받고, 증권사기 혐의로 기소되는 등 연이은 부패 의혹 앞에 이력과 친분은 무용지물이었다.

    하원 의원들이 조사를 마친 뒤 작성한 탄핵결의안에는 팩스턴 장관의 탄핵 사유가 20개 조항으로 정리됐다. 결의안 발의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필러 공화당 의원은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텍사스주 최고 법 집행자라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이 사안은 부패 연루 정치인이 제도와 절차에 따라 합당한 조치를 받는 지극히 정상적 시스템을 보여준다. 그 과정이 낯설어 보이는 건,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3자 뇌물 및 배임 등의 혐의를 받는 제1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체포 동의안은 같은 당 소속 의원 다수가 반대표를 던지며 부결됐다. 돈 봉투 살포나 거액 가상 화폐 보유 등의 의혹이 제기된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은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탈당을 선언했다. 자녀들에게 '아빠 찬스'를 쥐여주며 취업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최고위 인사들도 본격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퇴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온갖 꼼수가 횡행하는 게 한국 정치와 공직 사회의 일상이 됐고, 적법한 수사와 재판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치는 바닥을 치고 있다. 당연한 절차를 시행했을 뿐인 미국 일개 주(州)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기고자 : 정지섭 국제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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