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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의 문학관] 이소호 시인과 찾은 기형도문학관

    광명=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3.05.31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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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의 '빈집'은 가득 차 있었다, 시인 6만명의 마음으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인 기형도(1960~1989)가 떠난 곳은 여전히 '빈집'이었다. 30일은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세상에 나온 날. 1989년 출간 이후 매년 쇄를 거듭해 37만 부가 팔렸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중 가장 많이 팔린 시집. 9년 차 시인 이소호(35)와 함께 경기도 광명 기형도문학관을 찾았다. 이소호 시인은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처음 선물 받은 시집이 '기형도'였다고 한다. 그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제 목소리를 찾은 것은 기형도 시인 덕분"이라며 "그의 시집은 세상에 아주 밀착됐다. 희망이 절망으로 읽혔고, 불행은 분명한 회색이었다"고 했다.

    기형도가 살았던 소하동 옛집은 사라져 대규모 납골당 입구가 됐다. 문학관은 시내를 지나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시인의 큰누나 기향도(70) 명예관장은 문학관이 '빈집'이라고 했다. 시 '빈집'을 모티브로 만든 방엔 기형도의 유품 시계 하나만 거는 식으로 여백을 강조했다. "형도가 말했던 것처럼 자연 그대로의 '빈집'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빈 공간을 채워줬으면 좋겠어요."

    3층 규모의 문학관에서 주된 전시 공간은 1층에 마련돼 있다.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학생회장 배지, 깨알 같은 글씨로 적은 노트, 손때 묻은 카세트 테이프…. 기형도의 유년 시절을 따라가다 보면 '안개의 강'에 들어서게 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라는 '안개'의 시구가 들리고 이내 적막이 온몸을 감쌌다. 발아래로 시 전문이 강물처럼 흘렀다. 좌우 벽면엔 안개처럼 뿌연 시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기향도 관장이 "이 공간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라고 말하자, 이소호 시인이 "보는 사람이 각자의 안개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기 관장이 '안개의 강'을 지나 전시된 양복 앞에서 멈춰 섰다. "형도가 죽고 나서 옷을 다 버렸는데, 이거 하나만 어머니가 옷장 속에 꼭꼭 숨겨놨던 거예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관에 넣어 달라'고 한 옷이지만, 설득했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이 촉촉이 젖었다. 40여 년 전 미국으로 떠났던 기 관장은 홀로 사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위해 귀국했다. 그 어머니가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처음 문학관 열 때 형도 생각에 힘들었는데, 이제는 '형도야 고맙다'라고 말합니다. 오시는 분들에게 기운을 받으며 슬픔을 이겨냈어요."

    기형도의 '빈집'은 수많은 시인들의 온기로 채워졌다. 문학관 2층 벽면에는 기형도에게 보낸 편지 수십 통이 걸려 있다. "나의 아버지도 기형도 시인의 아버지처럼 뇌졸중으로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힘들게 자란 어린 나의 슬픈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손이 움츠러들어서, 문학회도 수업도 다 그만두고는, 그래도 써야겠기에 이곳을 찾았습니다." 기형도를 만난 적 없는 어린아이들도 그리움을 내비쳤다. "기형도 시인님, 시 잘 보고 읽었어요. 이 글은 당신의 혼이 읽고, 또 읽을 때까지 떼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개관 이후 5년 반 동안 6만4000여 명이 문학관을 다녀갔다. 기형도문학관은 올해 성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시 수업을 하는 '시인 학교'를 열 계획이다. '빈집'이 곧 수많은 시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을 것이다.

    문학관 옆 기형도문화공원에 가니, 그의 시가 적힌 조형물이 곳곳에 보였다. '엄마 걱정' '나리 나리 개나리' '정거장에서의 충고'…. 어느 순간 거리에서 시를 지었을 기형도가 보이는 듯했다. 풀이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기고자 : 광명=이영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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