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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30) 22세기를 위한 예술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발행일 : 2023.05.30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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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적이었을까? 아니면 신기하기만 했을까? 19세기 첫 사진을 본 사람들 생각이 궁금해졌다. 눈부시게 빛나는 여름 햇살, 빨간 장미의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 영원히 기억할 것만 같은 세상의 아름다움은 눈을 감는 순간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눈으로 본 세상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인간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어 보았지만 "영원히"라는 단어는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단어인 듯했다.

    하지만 사진 기술 발명은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상이 렌즈를 통해 필름에 담기고, 이렇게 필름과 종이에 남은 세상은 수십 년, 수백 년 보존이 가능하다. 나 혼자만 볼 수 있었던 세상을 모두가, 그리고 먼 훗날에도 볼 수 있게 되자 예술가들은 혼란에 빠진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정교하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역할 아니었나? 기계가 세상을 더 정확하고 영구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화가와 조각가는 왜 있어야 할까?

    예술가는 대부분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외면하거나 거부한다. 하지만 예술의 역할은 기계보다 세상을 더 정교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들의 이름은 머지않아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예술가들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기계가 보여줄 수 있다면, 인간은 눈으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인상파, 야수파, 표현주의, 미래파, 신즉물주의, 큐비즘… 20세기 현대미술의 시작이었다.

    데이터를 수천억 건 학습한 인공지능은 이제 새로운 글과 그림을 생성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계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과연 창작일까? 아니면 단순히 통계와 재조합을 통한 모방일까? 그리고 만약 기계가 창작할 수 있다면, 미래 창작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19세기 사진 기술이 20세기 현대미술의 기원이 되었듯, 21세기 생성형 인공지능이 과연 22세기 새로운 예술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기고자 :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98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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